매일신문

[김일광의 에세이 산책] 나무를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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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차가운 바람이 그렇게 불더니 오늘은 잠잠해지면서 햇살이 따갑다. 곧 유월이 오고 여름이건만 며칠 사이에 겨울과 여름을 한꺼번에 겪은 느낌이다. 텃밭에 풋것을 키워 보겠다고 서둘러 심은 모종들이 난데없는 냉해로 많이 쓰러졌다. 그런 쌀쌀함 속에서도 나무들은 초록 기운을 끌어모으더니 기어이 잎을 키우고 꽃을 피웠다. 대견스럽다.

찬찬히 집 주위를 둘러보았다. 울타리처럼 심었던 쥐똥나무, 곰솔, 만리향, 자귀나무, 줄장미. 그들은 온몸으로 바람을 막으며 텃밭에다 갓 심은 여린 작물, 그 생명들을 지켜 주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그 나무들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었다. 텃밭에 있는 고추, 상추, 토마토, 오이 등등, 우리 입에 들어가는 작물만을 애지중지했다. 그런데 이번에 바람 치는 날을 여러 차례 겪으면서 울타리에 심어놓은 나무들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들 덕분에 사계절 채소를 맛볼 수 있었음을 깨달았다. 따지고 보면 우리 곁에는 저마다 이름 하나씩 달고 제 모습으로 살아가는 나무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들도 이 땅에서 자신의 몫을 다하면서 우리와 함께 살고 있다.

그런데 지금껏 나무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가. 으레 그 자리나 지키는 존재쯤으로 인식했다. 함부로 대해도 상관없는 무심한 물체로 대했는지도 모른다.

마오리족은 아이가 태어나면 탯줄을 깨끗한 곳에 묻고 그 위에 나무 한 그루를 심는다고 한다. 그 나무를 아이 생명의 표징으로 삼고 그 자리를 신성하게 다루었다. 나무가 무성하게 잘 자라면 아이도 무럭무럭 성장하고, 나무가 고사하면 아이에게도 불행이 닥친다고 믿었다. 나무와 인간 사이에 일종의 연대감을 형성하였다.

이런 전설이나 풍습은 우리에게도 상당히 많다. 단군이 신단수 아래에다 신시를 열었다는 신화가 있다. 또 마을마다 노거수인 당수나무가 있었다. 나무를 중심으로 주민들은 마음을 모을 수 있었으며, 인간의 그 마음이 하늘과 맞닿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들의 삶을 나무라는 존재를 통하여 하늘에 기대왔다. 이러한 생각이 오늘날에 이르러 자꾸만 사라지고 있다. 나무를 우리 인간과 함께 살아가야 할 존귀한 생명체 혹은 메신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나무를 함부로 베어내고, 불태우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행해지고 있다. 그렇게 변화된 인간의 마음들이 나무뿐만 아니라 인간 생명까지도 가볍게 여기게 된 것은 아닐까.

평화보다는 전쟁을, 화해보다 갈등이 빚어내는 뉴스가 넘쳐나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생명의 울타리가 되어 주는 나무들이 새삼스럽게 커 보인다.동화작가

김일광 동화작가

김일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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