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국수의 도시 대구, 더운 날씨에 후루룩!

이채근 선임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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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의 변신은 무한대다. 날씨에 따라 뜨끈한 국물과 함께 몸을 데울 수도 있고, 얼음 동동 뜬 차가운 국물에 면을 넣어 열불나는 속을 잠시나마 식혀볼 수도 있다. 이도저도 입맛 없을 때는 매콤새콤한 비빔국수로 비벼먹으면 제격이다. 밥처럼 끈기있게 꾹꾹 씹어야 하지 않아서 간단히 출출한 배를 채우기에 좋다.

어떨 때는 가느다랗게, 어떨 때는 두툼한 면발로 즐기기도 하지만 어쨌든 길이가 길다는 것이 국수의 공통점이다. 끊기지 않고 긴 면발을 유지하기 위한 탱글한 식감이 필수다. 덕분에 긴 면발을 후루룩 입 속으로 잡아당겼을 때 찰랑찰랑 흔들리는 그 특유의 느낌도 재밌다. 그래서 국수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많은 사랑을 받는 음식이 됐을 것이다.

더운 날씨 탓일까. '폭염'으로 유명한 대구는 전국에서 국수 소비량이 가장 많은 국수의 본고장으로 꼽힌다. 수십 년 명성을 이어온 수많은 국숫집이 각축을 벌이고 있고, 한 때는 전국 국수 생산량의 60% 이상을 차지하며 국수 생산을 선도해 온 도시이기도 했다. 대구의 국수, 그 역사와 현재 속으로 들어가 보자.

이채근 선임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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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국수의 역사, 대구에서 태동하다

"대한민국 근대 국수의 역사는 대구에서 모든 것이 이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는 것이 풍국면 최익진(56) 대표의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1933년 문을 연 풍국면을 필두로 38년 설립된 별표국수, 이후 곰표국수, 소표국수 등 국내 대표 국수회사들이 대구 지역에 터를 잡았다. 1980년대 초까지 전국 국수 생산량의 60% 이상이 대구에서 만들어졌다.

이는 대구가 분지라는 특수한 지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방이 동그랗게 산으로 둘러싸인 대구는 매우 더운데다, 비가 적게 오기 때문에 습기가 적어 국수 생산에 가장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지금이야 자동화 설비를 갖추면서 전국 각지에 국수 생산 공장이 들어섰지만, 자연 건조 방식을 사용했던 과거에는 고온 건조한 기후로 국수를 빠르게 말릴 수 있는 대구가 국수 생산지로 각광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여기에다 경부선 철도가 놓이며 물류의 거점도시였다는 점과, 6·25 전쟁을 거치며 미국의 구호물자에 의존했던 밀가루를 보다 손쉽게 구할 수 있었다는 것도 한 몫 거들었다.

이채근 선임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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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업계 대기업들의 진출로 이제는 많은 국수업체들이 문을 닫았지만, 풍국면 만은 여전히 85년째 대구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풍국면은 삼성의 전신인 삼성상회가 만들었던 '별표국수'도 넘겨받아 지금까지 업계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한다. 끊임없는 연구 개발을 통해 국수의 최대 약점인 퍼지는 현상을 늦춘 제면 기술을 개발하고, 밀가루가 투입돼 국수가 될 때까지 사람의 손이 전혀 닿을 필요 없는 완전 자동 설비 구축을 통해 최고의 위생과 식품안전을 지켜내는 등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대구 대표 국수는?

이채근 선임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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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는 지역마다 특색 있는 국수들이 있다. 강원도에 가면 옥수수 가루로 만든 올갱이 국수 한 그릇 먹어줘야하고, 춘천에서는 메밀로 만든 막국수가 유명하다. 그 외에도 안동 건진국수, 평양과 함흥 그리고 진주 냉면, 부산의 밀면, 내륙지방에서 많이 먹는 어탕국수, 전남의 팥칼국수 등 저마다의 지역색과 문화를 반영한 음식 문화가 존재한다.

대구에서는 '누른국수'를 내세운다. "대체 누른국수가 뭐야?"라고 궁금해 할 대구 사람들도 있겠지만, 경상도식 칼국수의 별칭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밀가루에 콩가루를 아주 조금 섞어서 반죽한 뒤 얇게 밀어 채 썰어 칼국수 면을 만들고, 멸치를 주축으로 다시마, 양파, 무, 대파 등을 넣어 우려낸 시원하고 깔끔한 육수를 기반으로 한다. 여기에 애호박과 여린 배추를 넣어 함께 끓이는 경우가 많으며, 김가루와 달걀지단과 함께 고명으로 올리는 내는 곳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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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엇갈린다. 홍두깨로 반죽을 눌러 국수를 만들어서 '누름국수', 음식의 색깔이 누렇게 보여 '누른국수'라는 설도 있고, 양념장을 넣어서 맛을 낸다고 해서 '장물국수'라는 말도 있다. 어쨌거나 대구 사람들은 타지역에 비해 칼국수 형식의 국수를 즐겨먹으며, 흔히 암뽕ㆍ수육 등을 곁들인다.

더운 날씨로 인해 대구 시민들은 전국 평균에 비해 연간 3배 이상 국수를 소비한다는 말이 있다. 어디서 나온 통계인지 확인할 수 없었지만 아마 더운 날씨 탓이 아닐까 싶다.

이채근 선임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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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민들의 유별난 국수 사랑은 서문시장에 가면 눈으로 목격 가능하다. 셀수 없을 만큼 수많은 국수집이 드넓은 서문시장 곳곳에서 눈에 띄는데다, 국숫집만 밀집된 골목도 있다. 칼국수 스타일이 유명한 곳은 서남빌딩 뒷골목이다. 합천할매칼국수를 비롯해 수십여개의 가게가 좁은 골목길에 몰려 경쟁을 벌인다. 대부분 직접 반죽을 밀어 손으로 썰어낸 손칼국수다. 4지구와 1지구 사이에는 포장마차형으로 된 국숫집이 줄지어 서 있다. 이곳에서는 주로 잔치국수를 판매한다.

'바르미샤브샤브칼국수'는 대구 국수 신화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1998년 수성구 두산동 한 주택에서 작은 칼국수집으로 외식업에 첫발을 딛었지만, '착한 가격에 맛까지 좋다'는 평을 얻으며 승승장구해 다방면으로 사업을 확장했고 2015년에는 인터불고호텔을 인수하기에 이른 것이다. '칼국수 집이 특급호텔을 삼켰다'며 전국 언론에 회자된 사건이었다.

바르미샤브샤브칼국수는 10년이 훌쩍 흐른 지금도 여전히 많은 인기를 얻으며 성업중이다. 경상도식 얼큰한 국물맛이 서울ㆍ수도권 시민들의 입까지 사로잡았고, 1만원 선의 부담없는 가격에 미니뷔페까지 곁들여 '가성비 갑'이라는 평가를 얻은 덕분이다. 그렇다고 안주하진 않는다. 매 3개월마다 새로운 메뉴를 출시하고, 5~6년 마다 기존 사업모델을 완전히 뒤집어 새롭게 시작하는 전략을 통해 유행의 흐름을 타는 외식업계에서 굳건히 버틸 수 있었다.

◆더운 날씨에 후루룩!

냉면은 사실 대구가 본고장은 아니다. 하지만 유난히 더운 날씨, 시원한 냉면 한그릇을 찾는 이들이 많다보니 유명한 냉면집도 꽤 있다. 올 여름은 유난히 냉면의 인기가 거셀 것으로 보인다. 올 봄 남북정상회담의 만찬 메뉴로 '평양냉면'이 오르면서, 평양냉면의 인기몰이가 심상찮기 때문이다.

제형면옥은 자극적이지 않은 평양식 냉면 전통의 맛을 그대로 구현한 평양냉면 전문점이다. 평양냉면은 메밀을 주재료로 사용해 쫄깃하진 않지만 투박한 듯 깊은 맛이 느껴지는 면발이 특징이다. 부드러워 굳이 가위로 잘라먹지 않아도 된다. 육수 역시 자극적이지 않은데, 평양냉면의 진수를 느끼려면 국물에 아무것도 넣지 않고 육수 본연의 맛을 음미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한다.

그 외에도 대구의 3대 냉면으로 불리는 강산면옥, 부산안면옥, 대동면옥이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1951년 문을 연 강산면옥은 평양식 냉면을 표방하지만, 메밀가루와 고구마 전분을 혼합해 만들기 때문에 좀 더 쫄깃한 식감이다. 국물은 발효 식초를 사용해 감칠맛이 나는데 자극적이라는 평도 있지만, 강한 맛을 좋아하는 대구사람들의 입맛에 잘 맞다.

부산 안면옥은 6ㆍ25때 부산으로 피난 갔다 1969년 다시 대구에 정착한 이유에서 이렇게 가게명을 붙였다고 한다. 풍기 인삼을 넣어 육수를 낸 슴슴한 국물맛이 특징인데, 가게 입구에 들어서면 육수 우려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곳은 특이한 영업기간 때문에 더욱 주목받는 곳이다. 매년 4월1일 영업을 시작해 추석 연휴 전까지 약 6개월만 영업한다.

이채근 선임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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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 맛집은 더 많다. 어지간한 경력으론 명함도 못내밀 정도다. 원조동곡할매손칼국수는 60여년 동안 4대를 이어 운영하고 있다. 대구 도심에서 40분 가량 달려야 하는 외곽에 위치해 있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이 곳 국수와 수육을 맛보기 위해 찾는다. 이곳의 매력은 아궁이에 잇다. 커다란 아궁이에 장작불을 때워 국수를 삶아낸다.

대구 북구청 건너에 위치한 국수마을은 잔치국수 마니아들의 메카다. 벌써 40년째 잔치국수만을 팔아왔다. 진하게 우려낸 멸치국물이 시원해 꽤 많은 양의 면이지만 술술 넘어간다.

칠성동할매콩국수는 고소한 콩맛이 그대로 살아있는 진한 콩국수 맛을 자랑한다. 여름철 콩국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뜨거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길게 줄을 서는 집이다.

중구 약전골목 안에 위치한 '원조국수'란 작은 간판을 단 허름한 칼국수집 역시 수많은 사람들이 줄서서 먹는 맛집으로 손꼽힌다. 이곳은 직접 밀어 만드는 면에, 게를 사용해 빼낸 육수를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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