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의 시인 아르킬로코스는 "여우는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고슴도치는 하나의 큰 것을 알고 있다"고 했다. 이 말의 가장 일반적인 해석은 '여우가 온갖 교활한 꾀를 부려도 고슴도치가 갖고 있는 한 가지 확실한 호신술을 이겨낼 수 없다'는 것이다.
러시아 출신 철학자이자 사상가인 이사야 벌린은 유명한 에세이집 '고슴도치와 여우'에서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 작가나 사상가를 구분 짓는 가장 큰 차이, 더 넓게는 인간 유형의 차이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부류는 세상이 복잡하고 불확실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자신이 틀릴 수도 있음을 받아들이며, 실현 가능성이 높은 사건을 조심스럽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다. 벌린은 이들을 '여우'형으로 분류한다. 다른 부류 세상의 복잡성과 불확실성을 용인하지 못하고 단순하고 확실한 대답을 원한다. 심리적 편견에서 자신은 멀리 떨어져 있으며, 따라서 자신의 판단은 절대 틀릴 수 없다고 확신한다. 이들이 '고슴도치'형이다.
여우는 디테일에는 강하지만 종합에는 약하다. 고슴도치는 큰 그림을 그리는데 능하지만, 과도한 자신감 때문에 오판하기 쉽다. 이 때문에 어느 쪽이 더 우월한지 판단하기 어렵다. 벌린도 한쪽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균형 잡힌 사상가가 되려면 여우와 고슴도치를 조화시켜야 한다고 '절충'했을 뿐이다.
결국 상황에 따라 여우도 되고 고슴도치도 되는 지속적 변신이 필요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이는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지도자나 정책입안자도 마찬가지다. 이들에게 특히 요구되는 것은 내가 틀릴 수 없다는 고슴도치의 과도한 자신감을 경계하는 일이다. 정책을 그르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올 1분기 소득분배가 사상 최악이라는 현실은 이를 잘 보여준다. 소득주도 성장론의 처참한 파탄이다. 소득주도 성장론은 처음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다. 한 번도 현실에서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귀를 막고 밀어붙였다. 내 판단은 무조건 옳으며, 틀릴 수 없다는 자기 확신이 아니면 설명하기 어려운 무모함이다. 그럼에도 문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을 유지하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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