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뇌 손상 진단 안유정 씨

20년지기 지인 폭행에…목만 겨우 움직여

안유정(가명·49) 씨는 지난해 11월 지인으로부터 폭행 당해 심각한 뇌손상을 입고 투병 중이다. 6개월동안 누적된 의료비만 3천만원이 넘지만 가해자가 사망해 고스란히 기초생활수급자인 가족들이 부담하고 있다. 김윤기 기자
안유정(가명·49) 씨는 지난해 11월 지인으로부터 폭행 당해 심각한 뇌손상을 입고 투병 중이다. 6개월동안 누적된 의료비만 3천만원이 넘지만 가해자가 사망해 고스란히 기초생활수급자인 가족들이 부담하고 있다. 김윤기 기자

"반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가슴이 아프고 손이 벌벌 떨립니다." 박영순(가명·79) 씨가 병상에 누운 딸 안유정(가명·49) 씨를 보고 연신 가슴을 치며 말했다.

유정 씨는 지난해 11월 지인에게 폭행당해 심각한 뇌손상을 입었다. 사고 직후에는 움직이고 말하는 데 큰 지장이 없었지만 현재 의사소통이 전혀 되지 않고 목 아래를 거의 움직이지 못한다. 코와 기도로 연결된 가느다른 호스와 산소포화도 측정기 등이 유정 씨가 중환자인 걸 알아보게 했다.

유정 씨는 사람이 드나들면 고개를 돌려 쳐다보고 눈동자도 움직였다. 언니 안미정(가명·51) 씨가 애처로운 눈길로 동생을 보다 눈물을 훔쳤다. 안씨는 "이렇게 멀쩡해 보이는 사람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치료를 안 할 수도 없고…" 라며 말끝을 흐렸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지인의 폭력에 심각한 뇌손상 입어

끔찍했던 사건은 지난해 11월 2일 벌어졌다. 20년 동안 친구로 지냈던 A씨가 유정 씨의 집을 찾아왔다. 술에 취한 A씨는 말다툼 끝에 유정 씨의 얼굴과 머리를 마구 때렸고, 흉기를 휘둘러 목에 10㎝ 길이의 상처까지 입혔다.

A씨는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유정 씨를 한 대학병원 응급실 앞에 버려두고 달아났다. 유정 씨는 비교적 일찍 발견된 덕분에 응급치료를 받고 회복하는 듯 했다. 연락을 받고 달려간 가족들에게 당시 상황을 설명했고, 다음날에는 엉망이 된 집안을 정리하러 잠시 병원에서 외출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심각한 후유증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사건 후 1주일이 지나고 장기 입원하고자 옮긴 병원에서 유정 씨의 말은 점점 어눌해졌고 이유없이 주변을 배회하기도 했다. 정신과 질환을 의심하고 또다른 병원으로 옮겼지만 대화를 이어가기 어려울 정도로 혀가 말렸다. 뒤늦게 다시 찾은 대학병원에서는 외부충격에 따른 뇌손상 진단을 받았다. 호흡도 스스로 하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악화됐고 중환자실에서 연명치료를 받으며 보름을 보냈다.

의료진은 현재 유정 씨가 뇌 기능의 80% 가량 손상을 입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인지기능이 매우 떨어졌고, 의사소통은 전혀 불가능한 상태다. 코로 삽입한 호스를 통해 영양공급을 하고 있고 호흡도 불안정해 기도삽관을 했다. 양쪽 다리 모두 무릎과 발목 관절이 굳어 거의 움직이지 않고 오랜 병상생활로 엉덩이에 주먹만 한 욕창이 생기는 등 건강 상태는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수천만원 치료비는 부담…느리지만 호전되는 모습에 기대

가족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건 치료비와 간병비 부담이다. 가해자는 경찰수사 과정에서 숨진 채 발견됐고, 이후 모든 치료비는 가족들이 책임지고 있다. 올해 28세인 딸이 인천에서 홀로 직장생활을 하고 있지만 박봉에 외지생활로 경제적인 도움을 주긴 어렵다.

이미 쌓인 치료비와 간병비만 3천만원이 넘었다. 이 가운데 가족들이 지인들에게 빌린 돈만 2천만원 정도다. 특히 매달 300만원에 가까운 간병비 부담이 가장 크다. 앞으로 언제까지 투병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어서 미래는 더욱 막막하기만 하다.

직접 간병을 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어머니 박씨는 고령이고 언니 미정 씨도 공황장애와 불안장애로 손을 심하게 떨어 다른 사람을 돌볼 처지가 못된다. 미정 씨도 한 달 90만원 가량인 기초생활수급비로 두 딸과 함께 빠듯하게 살고 있다. 박 씨는 "미정산 병원비 800만원을 납부하라는 문자 메시지를 받을 때마다 가슴이 내려앉는다"고 했다.

어려운 형편에도 가족들은 느리지만 조금씩 나아지는 유정 씨를 보며 힘을 내고 있다. 의식조차 없던 유정 씨가 요즘은 가족들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등 주변 상황에 반응을 보이고 있어서다.

박씨의 휴대전화 배경화면에는 건강한 유정 씨가 활짝 웃고 있다. 박씨가 잠시 옅은 미소를 짓다 이내 흐느끼며 말했다. "생활용품 외판원으로 힘들게 돈을 벌어도 가족들한테 쓰는 건 아끼지 않을 정도로 살갑고 예쁜 딸이었습니다. 딸이 자리에서 일어날 때까지 지켜줘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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