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에는 해와 달이 나란하다. 땅 아래로는 파도가 넘실댄다. 붉고 단단한 몸집의 소나무에는 푸른 잎이 한결같다. 산에서 흐르는 좌우대칭의 폭포수는 곧은 형상이 힘차다. 우뚝 속은 다섯 개의 산봉우리는 비슷한 크기와 높이로 무게중심을 잡고 있다. 한 화면에 각각의 소재들이 도식적으로 표현된 이 그림은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이다.
'일월오봉도'는 해와 달 그리고 다섯 개의 봉우리가 그려진 궁중화이다. 여기서 해와 달은 음과 양이고 오봉은 오행을 상징한다. 산과 물은 생명이 숨 쉬는 공간이다. 며칠 전 포항시립미술관에서 본 것은 해가 단독으로 그려진 병풍이었다. 그 병풍 앞에서 일행 중 한 사람이 "그림 한 점에 삼라만상이 모두 다 담겼다"라고 한다. '삼라만상의 조화'야 말로 일월오봉도의 핵심이 아닐까 한다. 대체로 병풍으로 제작되어 '일월오봉병'이라고도 하는 이 그림의 연원은 불분명하나 조선시대에 병풍으로 많이 쓰인 그림인 것은 분명하다.
용상 뒤에 놓여 왕권을 상징하는 '일월오봉병'은 장식성이 강하며 백성들의 태평성대를 염원하는 의도에서 제작됐다. 임금님의 이상을 대변한다고도 할 수 있다. 이 그림에서 좀 더 자세한 설명이 요구되는 부분은 아무래도 좌우에 공존하는 해와 달이 아닐까 한다. 해와 달은 우주조화와 영원성의 표상이다. 일월오봉도의 해와 달은 어좌의 왕을 위에서 비추는 형상이다. 바로 '함께 빛날 때 천하가 화평하고 상하(上下)가 고루 창성하며 장수할 것'이라는 상징성을 시각화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서로 상반되지만 늘 상호보완적인 관계라는 점이다.
화면 구성과 색채, 소재 하나에 이르기까지 상징성이 강한 '일월오봉도'는 상징으로 삶과 우리의 염원을 비춘다. 교훈을 주기도 하고 훈계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미술상징은 우리에게 어떤 행위를 하라고 직접적인 명령을 하지는 않는다. 상징을 통해 의미를 유추하고 숙고하도록 한다. 일월오봉도 앞에 앉은 조선의 왕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지방선거가 코앞이다. 곧 당선자가 결정될 것이다. '일월오봉병'을 배경으로 하는 어좌에 앉을 임금님은 아니겠지만 버금가는 당선자를 기대하는 마음 간절하다. 권력의 소유자가 아니라 시민을 어좌에 앉힐 수 있는 자세를 갖춘 당성자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미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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