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달해의 엔터인사이트] '먹방' '쿡방'의 놀라운 생명력

'먹방'(먹는 과정을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방송)과 '쿡방'(요리하는 과정에 집중하는 방송), 음식을 다루는 프로그램들이 진화된 형태로 발전하며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다. 음식을 만들고 먹는 과정을 보여주는 기획에서 벗어나 해외로 나가 외국인에게 음식을 판매하거나 로컬 식당을 돌며 현지 입맛을 즐기는 프로그램까지 나왔다. 심지어 식재료를 직접 키우거나 생산해 먹거리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주기도 한다. 2년여 전 일어난 '쿡방' 돌풍이 어느 정도 시들해지면서 나름대로 시청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새로운 포인트를 찾아 나선 셈인데 일부는 유효하고 어떤 경우는 큰 힘을 얻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인간의 삶에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식문화'를 다룬다는 차원에서 이 소재는 충분히 대중 친화적이며 충분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하지만 유사 소재를 활용하는 콘텐트가 많아 탄탄한 기획력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식상하다'는 평가도 피해갈 수 없다.

방망 쿡방
방망 쿡방

#먹는 과정 보여주는 것만으로 '기본'은 챙겨

배우 하정우는 연기력이나 스타성 만큼이나 '먹방'으로도 유명하다. 영화 '황해' '범죄와의 전쟁' 등에서 보여준 '먹는 연기'가 화제가 돼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MBC '전지적 참견시점'에 출연한 개그우먼 이영자는 음식과 맛에 대한 탁월한 묘사로 전성기를 되찾았다. 이렇다 할 흥미요소가 없었던 '전지적 참견시점'은 이영자의 '먹방'으로 시청률과 화제성을 잡고 인기 프로그램 대열에 오를 수 있었다. 그 뒤 '세월호 참사' 뉴스 보도 화면을 코믹요소로 이용하는 사고를 쳐 문제가 됐지만, 그럼에도 방송 초기 등장한 이영자의 '먹방'은 당시 방송을 본 시청자들을 쉴 새 없이 웃음짓게 만드는 놀라운 힘을 보여줬다.

방망 쿡방
방망 쿡방

국내에도 잘 알려진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는 특별한 사건 진행 없이 그저 주인공 이노가시라 고로가 지방 출장을 다니며 여기저기 들러 먹는 모습만 보여준다. 중년 남성이 혼자 돌아다니다 "배가 고프다"라고 중얼거리며 눈에 띄는 장소를 찾고 거기에서 맛보는 음식에 온갖 의미를 부여하며 행복감을 느끼는 과정이 사실상 이 드라마의 전부다. 음식이 바뀌고 이에 부여하는 의미가 달리지는 것 외에는 단순한 플롯과 유사한 신의 반복이다. 그런데도 이 드라마는 벌써 시즌7까지 제작되고 있으며 원작 만화 역시 드라마화 되기 전부터 '대박'을 쳤다. 동명 원작을 그린 만화가 구스미가 어떤 정보도 없이 그저 발품을 팔아 식당을 발굴하고 식당의 음식을 자신의 작품에 활용했으며, 지금도 만화와 드라마에 소개된 식당이 일본 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최근 한국의 비빔밥과 돼지갈비까지 소개해 화제가 됐다.

하정우와 이영자, 그리고 '고독한 미식가'의 '먹방'이 보여준 영향력을 감안할 때, 분명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대중에 어필할 수 있는 요소가 충분하다. 그래서 여전히 많은 인터넷 개인방송 BJ들이 '먹방'으로 인기를 얻고 상당한 유저들이 이들의 먹는 모습을 지켜보며 즐거워한다.

방망 쿡방
방망 쿡방

굳이 '먹방' 시청자들의 심리를 해석해보자면 '헛헛함'을 채우기 위해 비롯된 시청행위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 단순히 먹고 싶은 음식을 누가 대신 먹고 있는 모습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낀다고 볼 수도 있고, 또 다이어트 등으로 식욕을 억제하는 상황에서 '먹방'을 보며 정신적 포만감을 가진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한편으로는 모바일 및 SNS의 발달과 맥을 같이한다고 분석할 수도 있다. 손쉽게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며 타인과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세상이다. 맛집을 찾아다니며 음식을 먹고 사진을 찍어 '나는 이 음식을 먹어봤다'는 사실을 알리는 '놀이문화'가 형성된 지금, '먹방'은 이 흐름에 편승해 더욱 큰 영향력을 얻고 있다. 소위 '혼밥'(혼자 먹는 밥) 문화까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어 '맛있는 음식'과 '먹는 행위'에 대한 호기심도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타인을 만나 대화하며 사교의 장으로 식사자리를 활용하는 것은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그만큼이나 혼자서 음식 자체에 집중하고 즐기는 경우도 많아졌다. 다른 이의 '먹방'을 보며 그 음식을 경험하러 찾아가는 과정을 즐거운 놀이로 받아들이고 그럼으로써 만족감을 느끼는 이들이 늘고 있다. 그렇게 수요층의 니즈가 형성됐으니 '먹방'과 '쿡방'을 만들어내는 생산자들의 일감이 줄어들 리가 없다.

방망 쿡방
방망 쿡방

#끊임없이 생산되는 음식 관련 프로그램

'먹방'과 쿡방', 소위 음식 관련 프로그램은 지금도 넘쳐난다. 지난 4월부터 tvN에서 방영되고 있는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는 요식업계 스타 CEO 백종원을 내세운 '음식탐방' 프로그램이다. 백종원이 세계 곳곳을 돌며 갖가지 음식을 맛보는 과정을 보여준다. '고독한 미식가'의 콘셉트와 어느 정도 유사한 부분도 있다. 다만 백종원의 맛 평가는 극중 이노가시라 고로에 비해 굉장히 명확하고 단순하다. '고독한 미식가'의 철학적 비유와 달리 시청자들의 음식 자체에 대한 직접적인 이해를 돕기에 좋다. 짜면 짜다, 달면 달다고 즉각적으로 내놓는 음식에 대한 견해가 보는 이들을 즐겁게 해준다.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은 백종원이 출연중인 또 다른 음식 관련 프로그램이다. 푸드 프랜차이즈의 대표 백종원이 작은 식당들의 회생을 돕는 과정을 그린다. 앞서 푸드트럭 창업을 도와주던 '백종원의 푸드트럭'을 개편해 '골목식당 살리기'라는 기획을 내놨다. 판매용 음식에 대한 다양한 팁이 나오고 '맛있고 가성비 높은 음식'들이 등장해 식욕을 자극하기도 한다.

'냉장고를 부탁해'로 방송계에 '쿡방'열풍을 일으키고 수많은 스타셰프들을 양산한 JTBC는 6월중 새로운 '쿡방' 프로그램 '팀셰프'를 론칭한다. '냉장고를 부탁해'의 성희성PD와 CJ 계열 채널에서 '마스터셰프 코리아' '한식대첩' 등을 기획 및 연출한 하정석PD가 뭉쳤다. 태국과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양국 셰프 및 출연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요리 대결을 펼치게 된다.

방망 쿡방
방망 쿡방

tvN은 지난 5월까지 해외 현지에서 푸드트럭을 운영하는 과정을 담아낸 '현지에서 먹힐까?'를 방영했다. 이어 5월 30일부터 '식량일기'라는 새로운 개념의 음식 관련 프로그램을 내놨다. '새로운 개념'이라고 말한 이유는 컨셉트 자체가 '하나의 요리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재료를 자체적으로 키워내는' 독특한 기획 때문이다. 문제는 이게 좀 과하게 보이는 부분이 있다는 것인데, 이미 첫 음식인 닭볶음탕을 만들어내기 위해 병아리를 기르는 모습을 보여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음식 재료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식탁에 오르는지 보여주겠다는 기획이지만 시청자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경향이 다분하다. 이걸 두고 '진화'라고 표현해야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 '먹방'이나 '쿡방'이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방망 쿡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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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달해(대중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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