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人 스토리] 디자이너 외길 인생, 이유정 'LBYL'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꿈꾸는 100년 기업

대구에서 유명세를 가지고 왕성하게 활동한 의상 디자이너를 꼽자면, 최복호, 천상두, 박동준 등의 대표적 인물들이 떠오른다. 이후 대구에도 중견 의상 디자이너들이 여러 사람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이번주 이 코너에서는 이유정 디자이너를 주목한다. 2015년부터 웨딩을 포함한 토탈 디자이너로서 (주)SYSL을 설립해 웨딩 뿐 아니라 파티복 리엘 드레스를 포함한 'LBYL' 브랜드로 사업영역을 확장했다. 이유정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의상 디자인의 콘셉트는 "로맨틱"(Romantic). 'LBYL' 브랜드를 입는 모든 고객은 옷으로 인해 판타스틱한 로맨스를 꿈꾸도록 만들자는 취지다. 자신도 꿈꾸고, 고객도 구름 속을 걷게하자는 두 개의 꿈을 담고 있다.

'앞으로 뭘 하고 싶냐'는 댓바람 질문에 이유정은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 돈 욕심이 별로 없었지만, 이제부터 전략적으로 접근해 'LBYL'을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우겠다"며 "대구에도 프랑스의 명품 브랜드 '샤넬'처럼 지역경제발전에도 큰 도움이 될 브랜드를 만들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유정 디자이너 이채근 선임기자 mincho@msnet.co.kr

◆10세에 시작, 뼈 속까지 의상 디자이너

1970년생 이유정은 의상디자인 경력만 39년이다. 10세(초등학교 3년)에 규방공예부터 출발한다. 지금은 세상에 없지만 할머니(김숙희)와 외할머니(김순경) 사이에서 규방공예 취미를 공유하며, 당시 어린 손녀가 서문시장에서 사온 포플린(면 종류)으로 옷을 만들고 재봉틀까지 사용했다. 이 취미는 학창시절 학예회 및 연극 등에서 의상을 만드는 일로 이어졌다. 효신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집안의 화목하고 넉넉한 환경을 배경으로 삼아 학예회에서 연출+기획+의상+소품 그리고 연극 대본을 쓰고, 직접 연기까지 하는 끼를 보였다.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다한 셈이다. 동부여중에 입학해서도 '엄친아'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공부도 상위권이었을 뿐 아니라 합창단, 학예회 연극 등에서 옷을 만드는 일을 큰 기쁨으로 여겼다. 정화여고를 다닐 때도 연극반에서 배우로 무대에 서면서, 무대의상을 도맡았다. 이유정은 대학전공도 본인의 끼대로 선택했다. 경북대 수학과에 가서 교사가 되라는 부모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영남대 의상학과(89학번)로 진로를 정했다. 10세 소녀의 꿈은 현재 39년째 외길 인생으로 진행중이다.

이유정 디자이너 이채근 선임기자 mincho@msnet.co.kr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이유정

이유정의 별명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엉뚱한 행동을 많이 하고, 자신만의 세계에서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꿋꿋하게 살기 때문. 때론 눈치가 없어 바보 취급을 받기도 하지만 전혀 굴하지 않는다. 친한 몇몇 친구들은 '4차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유정의 엉뚱함은 대학캠퍼스 시절에도 여실히 드러났다. 1,2학년 때는 그룹사운드 '코스모스'에서 보컬로 활동했으며, 시내 호프집에서 라이브로 노래하기도 했다. 하지만 노력실력이 퍼펙트하지 못해, 가수의 길은 일찍 접었다. 심지어 그 때 호프집 주인은 "내일부터 밤에 오지 말고, 낮에 와서 노래해라."는 소리를 듣고, 큰 상심을 했다는 얘기도 전해줬다. 대학 3학년 때는 2박3일 MT를 갔다와서, 무단가출해 친한 친구와 무작정 대전으로 갔다가 갈 때 '일일천하'로 끝난 일도 있었다. 여관 같은 곳도 무서워서 들어가지 못하고, 경찰서로 찾아가 숙직실에서 1박하고, 차비까지 얻어 다시 대구집으로 돌아갔다. 대학 4학년 때는 당시 극단 '처용' 이상원 대표를 찾아가 "무대의상을 한번 해보고 싶다"고 당돌한 제안을 했다. 이상원 대표는 런닝을 입은 채로 하품까지 하면서, 무작정 찾아온 이유정을 보며 "그래 함 해봐라"라고 했다. 이 후 이유정은 수많은 대구 소극장 연극에서 무대의상을 맡아, 힘든 경제적 여건 속에 연극을 하고 있는 극단에 크고 작은 도움을 줬다. 이유정의 엉뚱하기도 하지만 아직도 순수 소녀감성을 가지고 있다. 대학교 3학년 때 소개팅으로 만난 첫사랑 오빠와 결혼해 지금도 잘 살고 있다.

◆100년 디자인기업을 꿈꾸는 그녀

이유정은 독실한 크리스찬이다.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있다. 하지만 'LBYL'을 대구에 본사를 둔 세계적인 브랜드로 만들 큰 꿈을 꾸고 있다. "이제 돈도 많이 벌고, 제 브랜드를 가지고 세계로 나아갈 겁니다. 제가 죽고 나도 100년 이상 계속될 디자인기업을 일구고 싶어요. 이윤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아름다운 회사로 만들어 가고 싶어요."

실제 그는 수년 전 일본의 유명 걸그룹 'AKB 48'의 무대의상을 제작하기 위해, 도쿄로 찾아가 실무적인 타진을 했지만 아쉽게 성사되지 못한 일도 있었다. 이제까지 지역의 연극, 뮤지컬, 오페라 등 무대의상을 많이 만들었지만 앞으로는 세계적인 아이돌 그룹이나 유명 셀럽들의 로맨틱한 의상도 직접 만들어주고 싶은 희망을 현실로 만들고자 한다. 지난달 말에 공연한 대구시립극단의 뮤지컬 '반딧불'의 모든 무대의상도 이유정의 작품이었다. 상업디자인에 올인하다 오랜만의 무대의상 외출의 기분을 맛봤다.

이유정은 2007년 웨딩 디자이너로 이름을 떨치며, 매년 국내 패션쇼에 참여해 아름다운 웨딩드레서를 선보였다. 더불어 프랑스 파리, 일본 도쿄, 중국 베이징, 중동 등 해외 패션쇼에도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다. "저는 꼭 해낼 겁니다. 지금까지는 제 보람과 만족에 큰 비중을 뒀지만, 이제는 전략을 가지고 제 이름 석자 뿐 아니라 제 브랜드를 '대구의 자랑'으로 만들고 싶어요."

4일 오후 대구 중구 대봉동 한 커피숍에서 만나 인터뷰 하는 내내 이유정의 맑고 순수한 미소 뒤에 웬지 비장함이 느껴졌다. '대구의 자랑스런 2세대 디자이너'의 밝은 미래에 기대감이 가득하다.

권성훈 기자 cdrom@msnet.co.kr

사진 이채근 선임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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