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가 읽은 책]전설 속의 꽃은 다시 피어날 수 있을까?

이룸, 『설리화야, 설리화야!』, 카프카, 2018

그림 최유정 작
그림 최유정 작 '설리화'

작가는 전라북도 김제 출신이다. 어릴 적 경상도로 흘러들어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계명문화상과 심훈문학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작품집으로는 『핑크하우스』와 장편소설 『갓바위』 등이 있다.

이 소설은 역사소설이며 연애소설이다. 배경은 약 30년 전의 대구 수성교다. 그래서 작품 속에는 대구 사투리가 질펀하다. 어릴 적 사랑을 찾아 수성교 밑으로 흘러든 규대가 주인공이다. 규대는 노숙자 생활을 하면서, 예전에 방직공장에서 함께 근무했던 장 씨의 '그녀'라는 밑밥에 이끌려 동대구역에서 수성교로 거처를 옮긴다. 수성교 아래에서 어릴 적 사랑했던, 이제는 '뿌이'라 불리는 도람이를 찾기 위해 그녀가 나타날 만한 곳을 배회한다.

수성교를 기점으로 방천시장, 요정골목, 동부교회, 칠성시장 등 그녀가 나타난다는 곳은 다 기웃거려보지만, 규대의 눈에는 도무지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보았다고 하는데도 말이다. 수성교 밑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어 옛사랑을 찾아다니는 규대는 이촌향도(離村向都) 시대의 대표적인 인물군상이다.

여주인공 뿌이, 어릴 적 이름이 도람이었던 그녀는 사상범으로 감옥에 갇힌 아버지 때문에 미국 유학길이 막히고, 하굣길에 의문의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잃게 된다. 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게 쉽지 않은 시절, 그럴수록 안간힘을 쓰지만 세상은 그녀를 쉽게 살아가도록 가만두지를 않는다.

수성교 난간을 넘어 죽음을 택하려는 순간, 뚱사장이란 자에게 납치되어 앉은뱅이 몸 파는 여자 뿌이로 사창가까지 흘러든 애달픈 인생의 주인공. 결국 지금의 자신을 만들어낸 뚱사장을 죽이고, 인생의 마지막을 위해 고향 사방물로 방향을 잡는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그 길을 동행하게 된 두 주인공은 죽음 앞에서 서로를 갈망하고 서로를 갈등한다.

"입술은 마르고 침은 고인다. '도람아!'란 말이 입속 가득하다. 눈을 감는다. 잠시 후 눈을 뜬다. 수성교에 두고 온 운동화가 그의 눈을 뜨게 했다.

'인자 내려 가입시더. 대구로 돌아 가입시더. 슬픔과 상실의 도시 대구로. 내캉 내려가면……, 내도…….'"(p341)

마지막 순간 규대가 마음속에서 도람을 놓을 수 없었던 이유를 떠올리며 대구로 돌아가자고 하는 이 장면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두 연인이 다시 만나기까지의 우여곡절이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작가의 필력으로 흥미롭게 펼쳐진다. 작가는 이 소설에 자전적 요소를 많이 담았다고 한다. 1992년 전국체전이라는 행사를 위해 움막촌을 몰아내려는 행정기관, 그 자리를 지키려는 다리 밑 움막촌 막장 인생들의 대립이 당시의 시대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후일 문민시대라고 일컬어지는, 차기 정권의 대통령 선거운동과 맞물려 당시 군부정권의 마지막 큰 행사라 할 수 있는 전국체전이 같은 해에 치러진다. 작가는 왜 하필 이 해를 소설의 시대적 배경으로 삼은 것일까? 책에서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가볍지 않은 행간을 가지고 있지만 가볍게 읽히는 소설이다. 또 설리화는 어떤 꽃일까? 그 궁금증으로 소설을 선택했지만 소설 속에서 설리화가 어떤 꽃인지 알아내지는 못했다. 전설 속의 그 꽃은 언제 어디에서 다시 피어날까? 소설 밖에서 찾아야 할 일이다.

이웅현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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