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500종 원목가구 뚝딱 '봉산동 미다스 손' 이성일 씨

인테리어 경력 20년째인 이성일 씨는 수작업으로 맞춤 원목가구를 만드는데 남다른 손재주를 갖고 있다. 스탠드형 주방용 선반을 짜맞추며 망치로 나무못을 박는 이 씨. 이채근 선임기자
인테리어 경력 20년째인 이성일 씨는 수작업으로 맞춤 원목가구를 만드는데 남다른 손재주를 갖고 있다. 스탠드형 주방용 선반을 짜맞추며 망치로 나무못을 박는 이 씨. 이채근 선임기자

집안 생활에 건강이 중요해지면서 원목 가구에 대한 관심이 높다. 원목 가구는 나뭇결이 살아있어 자연스러운 느낌을 준다. 또한 공기 정화능력이 있어 새집증후군을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다. 합판 등 기성제품들은 접착제에 포름알데히드가 함유돼 있어 피부 아토피나 천식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최근엔 중년층을 중심으로 수작업 원목 맞춤가구 주문이 많이 늘고 있다. 자신이 원하는 디자인은 물론 색상, 규격 등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주방용 수납장, 식탁, 책상, 침대, 장식대 등 웬만한 가구는 주문제작할 수 있다. 일반 기성제품에 비해 투박하지만 견고해서 오래 쓸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봉산가구골목에는 원목 맞춤가구를 하는 손재주꾼이 있다. 인테리어 경력 20년이 넘는 이성일(47) 씨는 가구라면 뭐든 손으로 짜서 만들 수 있다. 그의 수작업 가구세계로 들어가보자.

전원주택용 원목우체통
전원주택용 원목우체통

◆정확한 재단 '미다스의 손'

대구 봉산가구골목에 있는 조그마한 목공방. 팔뚝이 탄탄해 보이는 근육질 아저씨가 보인다. 웃옷을 벗어던지고 회전식 전기톱날에 원목판을 재단하고 있다. 원목판에는 연필로 재단할 부분을 표시해두었다.

'웽~ 웽~' 요란한 기계음이 귀를 때리고 톱밥이 공중으로 튀고 있다. 톱날 위로 원목판을 수차례 밀었다 당겼다하니 금세 정사각형 다리 모양 4개가 재단됐다. 직사각형 판자도 수십 개를 잘랐다. 그리고 널다란 상판도 규격에 맞춰 잘랐다. 상판 한쪽은 둥글게 라운지 모양으로 잘랐다. 손 동작은 빨랐고 정확했다. 마치 미다스의 손 같다. 그의 얼굴은 땀과 톱밥이 뒤섞여 범벅이 됐다.

"덥다 더워." 선풍기가 더운 바람을 뿜어내고 있다. 그는 30분 정도 작업하고는 전기톱 스위치를 내렸다. 물 한모금을 마시며 갈증을 씻었다. 커피집 카운터 테이블을 주문제작하던 그는 잠시 쉬고 카운터 서랍을 다시 만들기 시작했다.

원목으로 만든 소반.
원목으로 만든 소반.

◆수작업 가구 500종 제작 가능

그의 목공방에는 원목으로 수작업한 가구나 소품이 여기 저기 진열돼 있다. 투박하고 빈티지한 책상, 문짝이 달린 주방용 진열장, 고풍스런 서랍장, 편안해 보이는 침대가 눈에 띈다. 귀금속 보관용인 유럽형 쇼케이스, 은색 클래식 손잡이를 부착한 파란색 화장대, 전원주택에 어울리는 우체통 및 야외벤치, 아이들 의자같은 깜찍한 미니 화분대, 분리수거 재활용보관함, 옷 걸이용 행거, 사진 걸이 액자, 물건 담는 소반 등등.

"무슨 가구라도 내 머리 속에 딱 그려져 있제." 그는 가구라면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고 장담했다. 무려 500종 이상 만들 수 있다. 그가 가진 장비는 전기톱, 전동드릴, 손대패, 끌, 망치 등이 전부다. 끊고 깎고 홈 파서 짜마추면 끝이다. 까다롭다는 5단 서랍장도 1주일이면 뚝딱 만든다. 컨디션이 좋으면 의자는 1시간 만에 완성할 수 있다. 맞춤 가구는 예술적 감각과 손재주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원목은 친환경" 주문 늘어

원목 가구는 친환경 제품이다. 원목은 나쁜 공기를 흡수해 정화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새집증후군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대부분 원목 자체로 주문한다. 색상을 원하면 천연도색을 한다. 원목가구는 화려하지 않고 투박해 보이지만 쓰면 쓸수록 윤기가 나고 결이 살아난다.

달성군에 사는 문희갑 전 대구시장은 이곳을 지나가다 젊은 사장의 열정에 놀라 원목 CD 장식장 3개를 주문해 가기도 했다. 수성구에 사는 하태일(54) 씨는 건강을 생각해 대학생 아들과 자신의 노트북용 좌탁식 책상 2개를 주문제작했다. 또 동구에 사는 김정식(64) 씨는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거실에 맞는 인테리용 장식장을 원목으로 맞췄다. 단독주택에 사는 70대 어르신은 아예 집안 가구 일체를 원목으로 맞춤제작을 했다고 한다. 주문제작 디자인도 예전엔 복잡한 스타일을 원했으나 요즘은 심플하고 깔끔한 스타일을 선호하고 있다. 수작업 가구는 견고하고 수명이 긴 게 특징이다.

◆고교 시절부터 목공에 관심

이 씨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목공에 관심이 많았다. 동네 목공소를 지나다 목공 일이 신기해 혼자 나무를 사서 집에서 탁자나 책꽂이를 만들어 보았다. 부모도 아들의 손재주가 뛰어남을 감지했다. 그는 군 제대 후 인테리어 현장에서 목수일을 하며 기술을 배웠다. 그 후 원목의 매력에 빠져 봉산가구골목에서 12년째 수작업 원목맞춤 가구를 하고 있다.

처음에는 실수도 많이 했다. 재단을 잘못해 비싼 원목을 수없이 망가뜨리기도 했다. 맞춤가구는 손님과 커뮤니케이션이 생명이다. 주문이 오면 손님의 스타일을 읽고 완벽하게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 원목 기본 수작업은 최소 3개월을 배워야 한다. 전문 직업인이 되려면 10년 이상 경험이 요구된다. 그는 목공 기술을 전수해주기 위해 수제자를 양성할 방침이다. 그의 최종 꿈은 한옥 내부를 원목으로 맞춤 인테리어 해보는 것이다. 자신의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실험해보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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