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특히 무장 독립투쟁에서 만주, 연해주의 의미는 절대적이다. 1920~1930년대 항일투쟁의 공간적 배경이요, 무장 독립운동의 핵심지기 때문이다. 안중근 의사의 단지(斷指)동맹지, 순국지, 봉오동, 청산리 대첩의 현장이 모두 이곳에 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 해외독립운동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저자는 광주지역 역사 교사들과 함께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의 출발역인 라즈돌리노예역, 50만 고려인 역사의 첫 장을 연 지신허(地新墟) 마을, 연추하(延秋河) 안중근 단지동맹비를 답사했다. 2009년엔 김좌진 장군 기념사업회의 '청산리 대장정팀'에 합류해 청산리 전적지, 압록강 철교와 대한민국 임시정부 교통국이 있었던 이륭양행 터, 고구려, 발해 문화유적을 돌아봤다.
그동안 10년 넘게 만주와 연해주를 답사한 후 고구려와 발해의 찬란했던 역사 유적, 선열들의 무장 항쟁부터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의 가슴 아픈 역사까지 모두 300여 쪽에 담아냈다.

◆연해주, 만주 항일투쟁지 집접 답사=역사 교사인 저자는 광복 60주년을 맞은 2005년 TV 프로그램을 통해 처음으로 봉오동전투, 청산리대첩 전적지와 접했다. 방송에서 안중근 의거지인 하얼빈역, 여순감옥, 라게르산 언덕의 신한촌기념탑, 명동촌의 명동학교, 이상설 유허비에 대해 알게 되었다. EBS가 10부작으로 제작한 '도올이 본 독립운동사'를 통해서였다.
저자는 '한국의 체 게바라'로 불리는 최재형과 김알렉산드라 스탄케비치, 최봉설, 임국정, 정이형의 영웅적 투쟁기를 접하면서 역사 교사로 살아온 자신을 부끄럽게 여겼다고 한다. 그들의 혁혁한 업적과 전공에 비해 인물들에 대한 정보와 지식이 너무 적었기 때문이다.
'역사 현장 답사' 목표를 세운 저자는 얼마 지 않아 꿈을 이루게 된다. 2006년에 보훈처가 주관한 나라사랑 교수학습 경진대회에서 '연해주 독립운동' 주제로 입상했기 때문이다. 부상으로 저자는 2007년 여름 블라디보스토크, 우수리스크, 크라스키노, 용정, 봉오동, 하얼빈, 여순을 돌아볼 기회를 얻게 된다.
저자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첫발을 디디며 "비행장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가는 길의 산과 들은 대한민국을 너무 닮아 있었다. 1937년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 이전까지 이곳저곳에서 농토를 일구고 살았던 한인들의 삶이 여기에 더 보태졌는지, 블라디보스토크는 우리의 마을처럼 친숙했다"고 적고 있다.
◆답사 통해 수많은 독립운동가들과 만나=저자는 만주, 연해주 답사를 통해 수많은 독립의 영웅들과 만났다.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 평양 진위대 나팔수에서 의병장으로 거듭난 홍범도, 간도 대통령으로 불린 김약연,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을 대변하는 엄인섭, 위국헌신(爲國獻身) 의지로 이토를 응징한 안중근, 그 밖의 많은 독립 영웅과 비록 이름은 남기지 못했지만 조국 독립을 위해 기꺼이 삶을 바친 수많은 이들의 행적을 기록했다.
그동안 만주와 연해주의 독립운동을 소개한 답사기나 안내서, 고구려·발해를 다룬 역사서는 가끔 소개된 적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이 에세이 형식으로 가볍거나, 너무 전문적인 내용으로 채워져 일반인들이 접근하기에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이 책은 교사인 저자가 학생들에게 수업하듯이 만주, 연해주 지역의 독립운동에 대해 설명하고,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만주, 연해주 지역의 독립운동사는 그간 사회주의계열 운동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으로 학교 교육과정에서도 소외되는 경우가 많았다.
◆동북공정으로 고구려 역사 왜곡 시작=저자는 연해주 지신허 마을을 찾았다가 가수 서태지가 헌정한 '지신허 마을 옛터비'를 보며 큰 감동을 받는다. 그 비를 세운 서태지를 민족의 아픔을 희망으로 풀어내는 역사의식이 투철한 음악인으로 평가했다. 이를 통해 영향력 있는 인물의 역사의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체험하고 그런 인물을 키워내는 것이 교단을 지키는 사람들의 역사적 책무임을 가슴에 새겼다.
저자는 2010년 3년여의 현장 기록을 바탕으로 '독립의 기억을 걷다'를 출간했다. 책 출간 8년이 지나 저자는 새로 증보판을 써내며 고구려와 발해의 찬란했던 유적부터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의 가슴 아픈 흔적으로 독자들을 다시 이끌고 있다.
그 사이에 대륙에서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하얼빈에 정율성기념관이 건립되었고, 하얼빈 역사에 안중근 의사의 기념관이 들어섰다 철거됐다. 용정대성학교 앞 윤동주 시비 옆에는 거대한 윤동주 동상이 섰다. 영화 '동주'의 주인공 송몽규 집도 다시 단장하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가장 큰 변화는 고구려, 발해 역사가 동북공정에 의해 중국의 역사로 둔갑한 점이다.
집안(集安)의 고구려 유적은 중국식으로 꽃단장을 했고 박물관의 전시실 주제는 '한당고국'(漢唐古國:한나라와 당나라 시기의 옛 국가)이 되었고, 발해 수도인 상경용천부(上京龍泉府) 안내판에는 '발해는 중국 당나라 때 말갈족이 건국한 나라'로 왜곡돼 있었다.

저자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독립 영웅들과 이들의 활동을 뒷받침한 만주, 연해주 동포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민족이 기억해야할 주제를 '시간'과 '사람'과 '사건'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리고 그 사건, 인물과 삶이 현재 우리와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 기억하자고 말한다. 312쪽, 1만6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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