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40대 이상인 남자들이 군대 생활을 떠올릴 때 제일 익숙하면서 끔찍한 단어가 바로 '원산폭격'이다. '원산폭격'은 '한강철교'와 함께 군대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었던 얼차려 방법이었다. 그런데 '원산폭격'은 표준국어대사전에 '사람들에게 뒷짐을 진 채 몸을 굽혀 머리를 땅에 박으라는 구령, 또는 그 구령에 따라 행하는 동작.'으로 등재가 되어 있지만, 얼차려 '한강철교'는 사전에 등재되지 않았다. 아마 엎드려뻗쳐서 뒷사람의 어깨에 발을 올리는 '한강철교'는 단체에만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원산폭격'보다 덜 사용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한강철교'와 마찬가지로 '원산폭격'도 그 이름이 6·25 전쟁에서 비롯된 것이다. 원래 원산은 명사십리가 있는 갈마반도와 북쪽의 호도반도가 마주 대하면서 자연적으로 방파제의 역할을 하고, 조수간만의 차가 적어서 항구가 들어서기에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전국 어디서나 상엿소리에는 "명사십리 해당화야 꽃이진다 설워마라/ 명년삼월 봄이오면 그꽃다시 피건마는/ 인생한번 사라지니 다시필줄 왜모르나"와 같은 구절이 있는데, 이것은 명사십리 해당화와 같은 원산 지역의 풍경이 이승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풍경 중 하나임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천혜의 환경 때문에 원산은 조선시대부터 동해안의 중심지였으며, 경원선 철도가 생긴 뒤에는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전략적인 요충지가 되었다. 6·25 전쟁 때는 인천과 함께 상륙작전 후보지로 거론될 만큼 중요한 지역이었고, 평양과 함께 집중적인 폭격의 대상이 되었다. 당시 원산 지역은 성한 건물이 하나 없을 정도로 초토화가 되었는데, 그 결과 '원산'과 '폭격'은 오늘날의 연관 검색어처럼 묶이게 되었다.
그런데 한강철교는 얼차려를 받는 모양이 다리와 비슷해서 알겠는데, 원산폭격은 왜 그런 이름을 붙였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다. 원산폭격의 정석적인 자세는 공중에 뛰어올라 머리부터 땅에 박는 것이다. 이때 손은 완충 작용을 하고, 재빨리 열중 쉬어 자세를 한다. 그 모습을 보면 포탄이 땅에 떨어지는 모습을 충분히 연상할 수 있다. 요즘은 세상이 좋아지면서 원산폭격과 같은 가혹 행위들은 거의 사라지고 있다. 그리고 지금 원산은 폭격의 폐허를 복구하고, 한반도 평화 분위기에서 가장 먼저 개발될 지역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앞으로 원산폭격이라는 말은 실제로 쓰이지는 않고 문헌상에만 존재하는 화석과 같은 형태로 남을 것이다.
대구능인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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