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서원과 함께 '한국의 서원'에는 또 한 곳의 서원이 포함돼 있다. 풍산류씨 가문의 전통과 충의 사상을 보듬은 병산서원이다. 병산서원은 뒷쪽으로 '화산'(花山)이, 앞쪽으로는 낙동강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배산임수의 풍수 터와 함께 자연 속에서 자연의 하나로 여겨질 만큼 자연스럽게 앉아 있다. 병산서원은 건축미에서도 우리 문화의 본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 절제 속에서도 공간적 배치를 통해 다양성을 담보했다. 건물을 자연 위에 짓는 것이 아닌, 자연의 일부로 만든다는 성리학의 건축 미학을 잘 나타낸 서원으로 현대 건축학도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풍산 류씨 교육기관 풍악서당이 모체인 '병산서원'

'병산서원'(屛山書院)은 풍산읍에 있던 풍악서당을 모체로 건립됐다. 고려시대 풍산 류씨 집안의 교육기관이었던 풍악서당이 풍산읍 내 도로변에 있어 시끄러워 공부하기에 적당하지 않다는 이유로 1572년(선조 5년) 서애 류성룡(柳成龍'1542~1607)에 의해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
풍악서당은 1592년의 임진왜란으로 소실됐다가 1607년 재건됐다. 풍악서당이 서원으로 바뀌게 된 것은 1614년(광해군 6년)에 사우(祠宇)를 건립하고 류성룡의 위패를 모시면서부터다. 서원은 1863년(철종 14년)에 조정으로부터 '병산서원'으로 사액을 받았다.
서원 정문인 '복례문'(復禮門)을 들어서면 왼쪽으로 연당(蓮塘)이 있고, 맞은편 한 단 높은 곳에 2층 누각 '만대루'(晩對樓)가 가파른 계단 위에 옆으로 길게 서서 유식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만대루는 정면 일곱 칸, 측면 두 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누 아래에는 자연스러운 형상 그대로의 구불텅한 수많은 나무 기둥이 열을 지으며 2층 누를 받치고 있다.
'그랭이 기법'으로 놓은 울퉁불퉁한 주춧돌과 그 위의 휘어진 듯 꼬불꼬불한 모양의 기둥들은 위층 누마루에 서 있는 반듯한 기둥들과 다른 자연스럽고 소박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랭이 기법은 자연석을 이리저리 짜맞추고 그 위에 석축을 쌓아 건물을 올리는 것으로 불국사 등 대부분 고건축물에 활용됐으며, 땅이 흔들려도 돌이 상하좌우로 움직이면서 충격을 흡수해 숱한 지진에도 불구하고 건축물 붕괴를 막는 효과를 지닌 조상들의 과학적 건축법을 보여주고 있다.
만대루 밑을 통해 마당에 들어서면 마당 좌우의 동재와 서재, 그리고 맞은편의 강당 건물인 '입교당'(立敎堂)이 강학 공간을 형성한다. 강당은 정면 다섯 칸, 측면 두 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가운데 세 칸은 대청이고 양쪽 각 한 칸은 온돌방이다.
강당 대청 한가운데에 앉아 만대루가 들어선 앞쪽을 바라보면, 서원 일대의 경관이 또 다른 모습으로 얽혀 들어온다. 만대루 2층 일곱 칸 기둥 사이로 강물과 병산과 하늘이 일곱 폭 병풍이 되어 얽히며 펼쳐지는 풍경은 한 폭의 그림이다. 그것은 안도 아니고 바깥도 아닌 극적인 공간 분위기를 만들며 바로 나 자신이 자연 가운데에 묻혀 있는 느낌을 갖게 한다.
강당 동쪽 옆을 돌아 들어가면 제향 공간인 사우로 오르는 계단이 나온다. 사우인 '존덕사'(尊德祠)에는 북벽에 류성룡을 주벽으로 모시고, 동벽에 류진(柳袗'1582~1635)을 종향하고 있다.
◆만대루와 병산이 만드는 서원 건축미의 극치

한국 서원 9곳의 건축미는 세계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그중 가장 수려한 서원이 병산서원이다. 배산임수의 풍수 원칙을 지켜 지어진 다른 서원과 달리 병산서원 앞에는 병산이 길게 펼쳐져 있다.
분명 서원 뒤에는 화산이 있고 앞에는 낙동강이 있어 배산임수의 조건을 따랐지만 시야를 가득 메우는 병산의 모습은 풍수지리에 견해가 없는 누구라도 적합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게 해준다.
'건물 또한 자연의 일부'라는 가르침에 따라 서당을 짓고 뿜어져 나오는 서원 앞 병산의 '살'(殺)기를 막기 위해 커다란 만대루를 지었다.
정문인 복례문을 지나 서원 경내로 들어서면 앞마당에 빼곡히 들어선 배롱나무와 압도적 크기로 선 만대루를 볼 수 있다.
정면 7칸, 측면 2칸으로 서원의 누각이라 하기엔 넓은 만대루는 겉보기엔 여느 누각과 다를 것 없이 텅 빈 공간일 뿐이지만 병산서원의 비밀을 쥐고 있는 중요한 곳이다.
만대루는 유생들이 병산을 바라보며 쉴 수 있는 휴식처 역할을 할 뿐 아니라 바깥세상과 강학 공간을 분리, 고립시키는 울타리 역할을 했다.
만대루 지붕 한쪽에는 북이 걸려 있다. 이 북은 서원의 3가지 금기인 '여자·사당패·술'이 내부에 반입됐을 경우에 울렸다. 산천경개를 바라보며 하루를 보냈던 병산서원 유생이라면 적어도 이 3가지 금기가 아쉽진 않았을 것이다.
만대루를 내려와 강당 앞마당에서 다시 한 번 병산 쪽을 바라보면 만대루 기둥 사이로 꽉 찬 병산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정문에서부터 사당까지 병산서원을 한 바퀴 둘러보면 이곳이 서원으로서 최적화된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새삼 깨달을 수 있다.
앞에는 휴식처인 만대루가 있고 뒤에는 사당인 존덕사가 자리 잡고 있지만 공간적으로 서원의 중심에 위치한 강학 구역이 너무도 뚜렷이 구분돼 제사 때 사당을 찾는 문객들도, 만대루에서 논의를 청하는 선비들도 유생들의 입교당이 있는 강학 구역에는 쉽게 발을 들여놓지 못했을 것이다.
◆부시 전 미국 대통령 부자도 감탄한 병산서원
2005년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에 이어 2009년에는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안동을 찾았다. 이들 부자는 안동의 풍산고와 병산서원, 하회마을 등지를 방문했다.
부시 전 대통령의 안동 방문에는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과 친분이 깊은 (주)풍산 류진 회장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있었다. (주)풍산이 설립한 풍산 자율형사립고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특강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이후 풍산류씨 집안의 교육기관으로 유명한 병산서원을 둘러보고, 병산서원 바로 인근에 자리한 풍산그룹 류 회장의 고조부가 지은 '화악서당'에서 하회별신굿탈놀이를 관람했다.
조시 부시 전 대통령의 부친인 부시 전 대통령도 2005년 안동 방문 당시 병산서원을 찾아 입구에 기념식수했다. 지금도 나무가 자라고 있다.
부시 전 대통령의 병산서원 투어에서는 관광객들의 환영인사에 일일이 손을 흔들어 답했으며 일부 관광객들과는 악수와 기념사진 촬영에 응해주기도 했다.
당시 부시 전 대통령은 "세계 여러 나라를 다녔지만 이렇게 웃음과 표정이 살아 있는 탈춤은 보지 못했다"며 하회탈춤 관람 소감을 밝혔다. 또, "수백년 전해오고 있는 병산서원의 풍광의 아름다움이 한국의 대표적 역사유물로 후대에 오래도록 전승될 수 있기를 바란다. 한국이 자랑할 만한 세계적인 문화유산이 될 것"이라고 극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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