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 맺힌 들꽃과 눈 마주치면 마음엔 온종일 촉촉한 꽃물결이다. 바로 아침 산책길을 좋아하는 이유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산책길에서 만나는 자연을 좋아한다. 비갠 후에는 풍경이 더 선명하다. 가끔은 신을 벗어든다. 흙의 질감을 감촉하기 위해서이다. 맨발로 온갖 새소리의 협화음에 발맞추는데, 먼 산에서 까마귀와 한 남성이 닮은 목소리로 소통을 한다. 훌쩍 키가 자란 상수리나무 밑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동그란 접시꽃 사이를 걷다보면 어느새 들어섰던 그 길이다. 꽃과 새, 나무, 흙, 물, 풀잎까지 제 각각의 모습을 유지하는 자연과 사람이 조건 없이 하나가 되는 산책길이다.

게슈탈트 심리학에는 '그루핑의 법칙'(rules of grouping)이 있다. 독일의 심리학자 베르타이머가 주장한 이 법칙은 시각 대상의 유사성에 주목한다. 디자인이나 조형예술분야에서 적극 활용되는 이 법칙은 우리의 뇌가 모양이나 크기, 방향, 거리, 색깔, 위치 등이 비슷하면 한 그룹으로 보려고 하는 시지각적 논리가 핵심이다. 유사성(Similarity), 근접성(Proximity), 폐쇄성(Closure), 연속성(continuation) 등으로 구분되는 이 법칙은 빠르고 정확한 커뮤니케이션에서 그 효용성이 크다.
아침 산책길에서 그루핑의 법칙을 자연에 포개어 보았다. 서로 다른 종과 형상들도 하나로 묶곤 하던 자연이 준 힌트이다. 본래부터 무형(無形), 무색(無色)이었던 것처럼 서로 다른 것들도 조건 없이 품어서 하나 되게 하는 성품은 득과 실을 따지지 않는 자연의 본성인 듯하다. 만약 인간의 마음에도 그루핑의 법칙을 적용하라고 한다면 베르타이머는 어떤 기준점을 제시할 수 있을까.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처럼 보이지 않는 마음이 아예 이 법칙 자체를 불가능하게 하지 싶다.
다양한 마음들이 한데 어우러져 산다. 개인의 잇속만 챙기려는 마음과 이타심이 큰 마음도 한 그룹의 일원이 되곤 한다. 같은 명찰을 단 단체의 일원이라는 이유만으로 한 통속으로 묶어보는 결례를 범하지 말아야 할 이유이다. 먼셀이 20색 상환에서 초록색과 녹색을 각각 다른 색으로 표기하듯, 무턱대고 초록을 동색으로만 치부하면 곤란하다. 개개인의 각각 다른 사정을 세세히 살피지 못하면 한 그룹의 일원이어도 영원히 다른 세상이다. 마음의 탈(脫) 그루핑의 법칙이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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