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보수 쟁탈전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만큼 별명이 많은 정치인도 잘 없다. 홍반장, 홍그리버드, 홍감탱이, 레드준표, 식사준표, 홍럼프, 홍발정, 홍갱이…. 이게 다가 아니다. '홍간도' '민주당 X맨'도 있다. 그가 겉으로는 한국당 대표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을 돕기 위해 신분을 숨기고 한국당에 잠입한 '스파이' 또는 '엑스맨'이라는 풍자다. 그가 민주당의 숨은 선거대책본부장이라는 우스갯소리마저 나돌았다. 그가 입을 열었다 하면 한국당 표가 우수수 떨어졌으니 이런 말이 나올 법도 하다.

그가 이번에는 자당(自黨)을 향해 막말을 쏟아냈다. 그에 따르면 고관대작 지내고 국회의원을 아르바이트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 추한 사생활로 더 이상 정계에 둘 수 없는 사람, 국비로 세계일주가 꿈인 사람, 카멜레온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변색하는 사람, 감정 조절이 안 되는 사이코패스 같은 사람 등이 모여 있는 곳이 한국당이다. 이런 사람들 속에서 내우외환으로 1년을 보냈으며 이들을 청산하지 못한 것이 가장 후회된다고 했다.

당의 실패를 동료들에게 전가한 그의 태도는 비겁하고 물염치해 보인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한국당 현주소를 꽤나 정확히 짚었다는 생각도 든다. 지방선거 참패 이후 한국당은 국민들에게 사죄하고 반성하고 있다고 하는데, 정작 도대체 구체적으로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또한 한국당은 보수의 위기를 거론한다. 한국당은 자신만이 보수이고 민주당은 진보 또는 종북이라고 규정해왔다. 그러나 한국당이 보수 정당이라는 전제에 동의하지 않는 국민들도 많다. 지금의 한국당은 보수를 표방했을 뿐 수구 또는 기회주의자 집단이라는 것이다. 한국당의 포지션이 꼬이기 시작하는 맥점은 이 지점이다.

진보와 더불어 보수는 민주주의 발전에 없어서 안 될 존재다. 굳이 따지자면 우리 국민들의 이념 평균치는 보수에 가깝다. 그런데도 한국당은 보수 가치 실현에 대한 국민적 눈높이를 제대로 채워주지 못했다. 실패는 당연한 귀결이다. 그러다 보니 요즘에는 민주당이 보수 정당을 자처하고 나설 정도다. 바야흐로 정치권에서 '보수 쟁탈전'이 벌어지는 듯한 양상이니 이런 상전벽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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