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과 보신에 대한 경고였다. 대구경북(TK)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들은 말해야 할 때 말하지 않았고, 행동해야 할 때 행동하지 않았다. 유권자들은 여러 차례 경고음을 보냈건만 TK 국회의원들은 의식조차 못 했던 자신들의 적폐(積弊) 때문에 살을 에는 채찍을 맞았다.
6·13 지방선거에서 국민들은 사실상 한국당을 정치적으로 파면시켰다. 한국당에 더 충격적인 사실은 보수의 텃밭이라 여겼던 TK에서의 선거 결과다.
TK 민심도 한국당에 마지막일지도 모를 '레드카드'를 꺼내 들었다. 대구 광역의원 30명 가운데 9명, 기초의원 116명 가운데 50명이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 수성구는 재적의원 20명 가운데 10명이 민주당이다.
한국당 대구 기초단체장 당선인들은 4년 전 평균 득표율이 67%였지만 이번엔 48% 득표에 그쳤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향수가 가장 짙게 남아 있는 구미에서 민주당 후보 당선은 이번 선거의 결정판이다.
이번 선거는 TK 정치 기반과 유권자 의식이 뿌리에서부터 변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일시적인 바람이 아니다. TK 유권자들은 꿈틀거리고 있었지만 한국당 국회의원들만 몰랐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정권이 진보·좌파일 때는 보수의 목청만 높이면 당선됐고, TK 출신 대통령일 때는 줄만 잘 서고 친이·친박·보수 물결에 편승만 하면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TK 한국당의 실패는 국회의원들이 시대 변화를 외면했기 때문이다. 1970년대 태어나 198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닌 유권자가 이제 40대 중반이 되었다. 이들과 그 밑의 세대들은 진보냐, 보수냐는 관심 없다. '박정희 시대'를 살아본 50대 이상의 장노년층과 달리 정책과 신념에 대한 접근이 실용적이고, 현실적이다. 또 어느 당과 후보가 나의 삶과 가치를 고양시킬 수 있느냐로 행동한다.
이런데도 한국당은 한반도 정세 변화를 맹목적 색깔론 프레임으로 맞섰고, 대안 제시 없이 '샤이 보수'의 결집에만 기대었다. 20, 30대에겐 한국당 대표의 '꼰대' 이미지가 싫었고, 막말이 혐오스러웠고, 심술부리는 동네 아저씨 같은 모습이 무조건 싫었다.
또 TK 유권자들은 국회의원들이 행동해야 할 때 침묵하는 무소신과 존재감 없음에 더 실망하고 분노했다. 친박비박 패권 다툼이 있을 때, 당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을 때 누구도 "이건 아니다"라고 외치지 못했다. 친박을 자처했던 의원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됐는데도 "내 탓이오" 하고 정치적 책임을 지는 의원 하나 없었다. 오히려 친박 색채를 빼려 하고, 당 지도부에 빌붙어 후일을 기약하기에 바빴다.
사실상 '한국당 붕괴'의 채찍을 내려친 민심은 이제 TK 정치권에 '어디로 갈 것이냐'는 과제를 던지고 있다.
'보수의 본류'였던 TK 보수의 새로운 상(像)을 정립하고 새판을 짜야 한다. 먼저 보수재건, 보수혁명의 그림부터 그려야 한다.
시대의 변화를 읽고 보수 노선을 재정립해야 한다. 전통적 보수는 공동체를 위한 희생과 헌신을 바탕으로 자유, 안보와 경제성장 가치 지향을 근본으로 한다. 적어도 이에 동의하는 인사들이라면 야당 전체의 새 판을 짜야 한다. 또 외부에서 보수 혁신과 야권 대통합을 이룰 수 있는 인물을 당의 얼굴로 영입하는 데 TK 의원들이 주도하고 궐기해야 한다.
이대로라면 2020년 4월 치러질 총선에서 TK 한국당 의원 대다수가 살아남기 힘들다. 결단하고 행동해야 한다. 더 이상 숨어있지 마라. TK발 보수재건, 보수혁명을 위해 온몸을 던지라는 것이 지역 유권자들의 마지막 명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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