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도구들은 통나무 화구박스가 아닌 여행용 케리어에 실려 왔다. 칼 대신 자동연필깎이 가 붓꽂이엔 길쭉한 수정 펜이 나란히 꽂혀있었다. 격세지감을 실감케 한 도구들 사이로 긴장감이 감돌던 곳, 고등학생 미술실기대회장의 풍경이다. 며칠 전 참가자들은 하얀 도화지에 5시간을 꽉 채워서 부푼 미래를 그려냈다.
창작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흥미진진하다. 그러나 창작자는 코피를 흘리며 투혼을 발휘하곤 한다. 대회장에서 긴장하며 몰입하던 한 남학생의 모습이기도 하다. 화가 마티스는 "작업이란 자기가 표현하는 대상이 자신의 일부가 될 때까지 외부세계를 점진적으로 구체화하고 동화시켜 그를 캔버스에 투사하여 하나의 창조물로 만드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작곡가 말러가 "창조적인 예술과 실재의 경험은 결국 동일한 얘기이다." 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하여 창작은 종종 자기 경험에 기댄다.
대회장에서 미술실기교육방식을 재점검한 것은 그들이 기울인 노력만큼 다채롭지 못했던 내용과 형식 때문이다. 수잔 랭어가 "미술이야말로 우리의 정서적 경험을 반영하는 동시에 그것을 구성한다"고 주장하였듯 자라나는 재능이 주입식기술전수에만 갇혀있지 않길 바라는 마음은 비단 미술에만 국한된 것은 아닐 것이다. 세상의 변화를 두루 조망하고, 듣고, 읽고, 입체적으로 사고하며 다양한 경험을 토대로 의미를 찾아 능동적으로 표현하게 하는 교육환경조성이야말로 개성 있는 창작의 출발점이지 않을까.
며칠 전 미술관에서 특강을 한 문화예술행정가는 4차산업혁명이 도래한 현재의 예술작품들이 20, 30년 후에는 유물박물관에 전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50년 후에는 전시장과 공연장이 텅 비게 될 것이고, 초연결성(Hyper-Connected)과 초지능화(Hyper-Intelligent)가 텔레파시로 소통하는 시대를 열 것이라는 예측도 내놓았다. 지난 2016년에는 경매에 붙여진 딥 드림이 그린 작품 29점이 개당 2200달러~9000달러에 팔렸고, AI 화가는 렘브란트 특유의 화풍을 재현한다. 19세기 사진술의 등장 이후 화단에 닥친 또 다른 위기이다.
불완전함은 끊임없이 완전함을 항해 달린다. 그러나 갈망할 뿐 될 순 없다. 불완전함 속에 가려진 가능성을 찾고 실천해야할 몫은 화가에게만 주어진 과제가 아닐 것이다. 균형 잡힌 교육이야말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