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취재현장] '살코기 세대'를 위하여

이혜진 디지털뉴스본부 기자
이혜진 디지털뉴스본부 기자

점심 때 식당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다 씁쓸한 장면을 목격했다. 삼삼오오 모여 앉은 사람들이 대화는 거의 나누지 않고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동료와 몸은 같이 있지만 마치 각자 '혼밥'을 하는 듯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앉은 식탁을 둘러보니 나의 동료 역시 핸드폰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수다라도 떨며 스트레스를 풀고 싶었던 나는 별 수 없이 슬그머니 핸드폰을 들고 말았다.

곧장 친구에게 카카오톡을 보냈다. '평일 점심시간에 다 같이 밥 먹으러 나와서 대화 없이 핸드폰만 보는 직장인들 보는데 뭔가 슬프다.' 친구가 말했다. '어떤 식으로든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게 요즘 사람들이 쉬는 방식이지 않을까.'

친구의 말을 듣고 보니 문득 요즘 들어 점심을 거르고 낮잠을 자는 동료가 떠올랐다. 낮에 맥주 한 잔 마시고 싶어 일부러 혼자 점심을 먹는다는 친구도 떠올랐다. 점심시간은 직장인들의 유일한 '브레이크 타임(break time)'이니 동료에게 함께 밥을 먹자 거나 담소를 나누자고 강요할 권리가 내게는 없다. 그렇지만 시시콜콜한 대화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어쩐지 슬픈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요즘 2030세대에게 새로운 별명이 붙었다. '살코기 세대'. '인생에서 기름기를 쫙 뺐다'는 의미란다. 불필요한 인간관계는 최소화하고 관계를 맺더라도 필요한 것 이상 주지도 바라지도 않으며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을 선호한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새로운 사람과 관계 맺는 데 권태를 느끼는 '관태기(관계 권태기의 줄임말)'라는 말도 흔히 쓰인다. 20대의 79.9%가 혼자 보내는 시간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2016년 대학내일 조사결과)는 조사가 이런 현상을 뒷받침해준다.

생각해보면 인생을 우울하게 만드는 요소는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인생 앞에 켜켜이 쌓여 있다. 역대 최악의 실업률을 뚫고 취업을 해도 비정규직의 그림자가 등 뒤에 들러붙어 있고 평균 근로시간은 OECD 톱2에 든다. 사랑하는 사람과 둘이 평생의 동반자가 되기로 맹세하는 데 평균 2억이 넘는 돈(결혼 비용)이 들고 겨우 마련한 내 집은 사실상 은행 지분이 최대 7할이다.

"친구, 연애 포함 모든 인간관계는 사치"라며 핸드폰을 없애버린 취업준비생 후배의 마지막 메시지엔 '힘내'라는 별 영양가 없는 말밖에 해줄 수 없는 게 우리네 현실이다. 고된 현실을 차치하고서라도 젊은이들의 관계 기피 현상은 어쩌면 관계가 주는 득(得)보다 실(失)이 많다는 것의 방증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위로와 감동 등 인간관계에서 오는 만족보다 간섭으로 인한 부담과 스트레스가 훨씬 큰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 같은 진드기(라고 쓰고 관계집착증이라 부른다)들은 소통을 포기하는 법이 없다. 동료를 귀찮게 하지 않는 선에서 동료와 소통할 수 있는 법을 찾아보다 카카오톡으로 동료가 좋아할 만한 '움짤(움직이는 사진)'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대화라는 방법은 여의치 않으니 동료가 좋아하는 걸 하나라도 챙겨주며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서다.

대화라는 고전(?)적인 소통법을 고수하기보다는 관태기 시대에 맞는 새로운 소통법을 시도해보는 게 어떨까? 팁을 하나 드리자면 귀여운 강아지와 고양이 움짤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인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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