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대당 제국 쇠망사/자오이 지음/ 이지은 옮김/ 위즈덤하우스 펴냄

대제국 당나라는 어떻게 멸망했는가

대당제국 쇠망사, 책 표지
대당제국 쇠망사, 책 표지

중국인들 다수는 '당나라'를 중국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나라로 꼽는데 주저함이 없다.

이 책은 290년 이어진 당나라의 영광과 번영 때문에 우리가 간과하기 십상인 당나라 암흑기를 자세히 서술하고, 대제국에 위기가 어떻게 닥쳐오는지 살펴본다. 시기적으로는 '안사(安史)의 난※' 부터 당나라 마지막 순간까지를 서술하면서 제국이 걸었던 멸망의 길과 그 길을 막고자 애썼던 인물들의 투쟁을 보여준다.

※ 안사의 난=중국 당나라 중기에 안녹산(安祿山)과 사사명(史思明) 등이 주동이 되어 일으킨 반란(755년∼763년). 현명했던 당나라 현종(玄宗:재위 712~756)은 양귀비를 만나면서 국사를 등한시하고 환락에 빠졌다. 양귀비의 요청에 따라 양귀비의 사촌인 양국충(원래 이름은 '양쇠楊釗')을 재상으로 발탁하고, 양귀비 친척들을 고관으로 임명하는 등 나라를 어지럽혔다. 755년 절도사 안녹산은 양국충을 제거한다는 명목으로 반란을 일으켰고 천하는 기울기 시작했다.

안사의 난을 피해 현종이 사천으로 향하고 있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
안사의 난을 피해 현종이 사천으로 향하고 있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

안녹산의 반란군이 당나라 수도 장안(지금의 서안)을 공격하자 현종은 양씨 일족과 함께 촉(蜀·사천성)으로 피신하려고 했다. 그러나 황궁을 떠난 황제 행렬이 섬서성 마외역(馬嵬驛)에 이르렀을 때 황제를 호위하던 근위병사들이 반란을 일으켜, 국난을 불러들인 양국충을 비롯한 양씨 일족을 살해했다. 이때 양귀비도 죽임 당했다.

◇ 대제국 당나라는 어떻게 멸망했는가.

7세기 초부터 8세기 말까지 정치·사회·경제·문화 등 다방면에서 앞선 문물로 세상을 호령했던 당나라는 9세기에 이르자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안사(安史)의 난'이 일어난 뒤 당나라를 지탱해온 정치적·경제적 지배체제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고, 왕조는 급속히 흔들렸다.

중앙 권력이 약해진 틈을 타 지방 병권을 장악한 번진(藩鎭;당 ·오대 ·송나라 초기 지방지배체제로 절도사가 최고 권력자였다.)세력은 날로 강해졌다. 지방 곳곳에서 반란과 저항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황제의 측근으로 활약해온 관료와 환관의 갈등도 심화되었다.

유안·왕숙문·이강·이길보 등 걸출한 재상들이 무너진 종묘사직을 복구하기 위해 개혁을 단행했지만 환관 세력과 충돌하면서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환관들은 황제의 보좌와 생사를 손에 틀어쥐고 전횡을 일삼으며 번진세력과 결탁해 황권에 도전하는 등 혼란을 부채질했다.

◇ 끝없는 위기와 혼란…알력과 내분까지

755년부터 763년까지 당나라를 뒤흔든 '안사의 난'은 중앙정부와 반란세력의 갈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내란이었다. 현종, 숙종, 대종 등 3대 황제에 이르는 동안 펼친 투쟁에서 당나라 중앙 정부는 간신히 승리를 거두었지만 나라는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졌다.

대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덕종은 번진을 장악하기 위해 금위군을 정비하고 인사권을 단행하며 환관을 경계하는 한편, 유안과 양염(楊炎) 등 재능 있는 관료들을 발탁해 개혁을 추진했다. 하지만 유안과 양염을 견제하는 다른 관료의 모략과 두 사람간의 싸움으로 개혁은 실패로 끝났다.

양염은 도덕적으로 유안에게 치명타를 가하는 음모를 꾸며 황제를 분노케 하는 데 성공, 유안을 제거했다. 그러나 좋은 세월은 길지 않았다. 양염 자신도 다른 대신(재상 노기)에 의해 자신이 유안에게 가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죄를 뒤집어쓰고 쫓겨났으며 결국 자살하고 말았다.

두 재상의 실패와 죽음은 덕종의 실패로 이어졌다. 덕종은 즉위 2년 만에 충성스러운 재상 유안과 양염을 자기 손으로 죽였으며, 그들을 죽이고 난 뒤로는 그 자신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덕종은 마음먹었던 계획을 단 한 번도 끝까지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기에 실패한 황제였다. 조정은 그렇게 힘을 잃었고, 번진세력은 무력을 동원해 반란을 일으켰다. 덕종 대부터 시작된 제국의 위기와 혼란은 나라가 최후를 맞이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 생존 본능과 권력 쟁탈에 나선 인물들

힘을 잃은 황권을 상대로 여러 세력들이 권력투쟁에 나서면서 당나라 사회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게다가 관료와 환관의 갈등은 내부분열을 더욱 부추겼다. 황제의 권위를 지키고자 힘쓴 관료들과 황제의 권위를 이용해 사욕을 채우려는 환관들의 투쟁은 당나라 말기의 일상이었다.

지은이는 당시 권력투쟁에 나섰던 인물들의 심리와 그들이 걸어갔던 길을 드라마처럼 서술한다. 그들 각자는 저마다 다른 출신, 다른 신분이었기에 행보도 제각각이었다. 공통점이 있었다면 '생존 본능'이었다.

천하태평을 꿈꾸며 순종을 황제로 만든 왕숙문, 이전 황제가 남긴 혼란을 잠재우려 했던 헌종, 황제의 폭정에 불만을 품고 신책군과 추밀사와 결탁한 환관 왕수징과 양수겸, 문종을 처리하고 권력을 차지하려던 구사량, 조정의 세력을 확보하고자 붕당을 맺고 파벌싸움을 조장한 이종민과 우승유, 그리고 이에 맞선 이덕유, 그런 이덕유를 제거하고 황권을 다시 수복하려 했던 선종 등의 모습은 '강력한 황권'이라는 구심력이 사라지자 각자도생의 길을 걷기에 급급했던 인물들의 삶이자 당나라의 생생한 말로라고 할 수 있다.

목욕하는 양귀비를 훔쳐보는 현종. 백거이의 장한가에 나오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다.
목욕하는 양귀비를 훔쳐보는 현종. 백거이의 장한가에 나오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다.

◇ 분열과 부패 대제국 당나라의 최후 순간

당나라 말기에 황제로 즉위한 의종, 희종, 소종 등은 천자의 위엄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채 끝을 맞이했다. 관동 지역의 가뭄 때 황하 하류의 농민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자 소금장수 집안 출신으로 거금을 가진 황소(黃巢)가 반란을 일으켜 수도 장안을 점령했다.

'황소의 난'이라 불리는 민중봉기는 최종적으로 성공하지는 못했으나 당나라의 붕괴가 시간문제임을 만천하에 알렸다. 황소의 난을 시작으로 10여 개의 번진세력이 들불처럼 일어나면서 '왕도(王道)'는 사라졌다. 지은이는 정권의 멸망 요소를 '내부적 갈등, 외부적 위험, 부패한 정치' 등 세 가지 요소로 보면서, 당나라 또한 이 조건을 갖추었기에 멸망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이 책은 '멸망한 지 이미 천 년이 지난 당나라의 역사가 21세기인 지금도 계속 재현되고 있다'고 말한다. 당리당략에 빠진 정치계파가 꾸미고 야기하는 분열과 갈등은 진영·세대·남녀 가릴 것 없이 사회를 불안과 혼란으로 몰아넣는다. 번영했던 당나라가 멸망해가는 과정은 오늘날 국가와 조직을 비춰보는 거울 역할을 한다.

▷ 지은이 자오이는…

지은이 자오이(趙益)는 난징대학교 중문학과 고전문헌대학원 교수로 중국 고전문헌학, 중국 문화사를 연구하고 있다. 중국 교육부에서 진행한 육조시대 연구와 도교 경전 자료 정리와 같은 대형 연구과제를 맡을 정도로 전문성을 인정받는 대표적인 소장학자다. 문헌학과 문화사 분야의 연구는 물론 이를 바탕으로 당대의 역사를 서술하는 작업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644쪽, 2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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