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부여 지방에 전해지는 토속 민요 중에 '총각타령'이란 노래가 있다. '상주모심기' 노래나 '영남들노래'처럼 들에서 일하면서부르는 일종의 노동요다. 그 노랫말은 이렇다.
"머리머리 밭머리 동부 따는 저 큰애기/머리끝에 드린 댕기 공단인가 대단인가/공단이건 나 좀 주게/뭘 하라고 달라는가/망건탕건 꿰어 쓰고 자네 집에 장가갈세/장갈랑은 오소마는 눈이 올 제 오지 말게/우산 갓모 걸 데 없네/갓모랑은 깔고 자고 우산일랑 덮고 자세/잠잘 적에 꾸는 꿈은 무릉도화 부럽잖고/같이 잡고 거닐 적엔 비바람도 거침없이/풍파 속에 사는 세상 임 놔 두고 어이 살까/장가 들러 어서 오소."
이 노래의 이해를 위해서는 약간의 해설이 필요하겠다. 밭에서 댕기를 드린 한 처녀가 동부콩을 따고 있다. 이웃 총각이 이 처녀에게 수작을 건다. 댕기를 만든 천이 대단인지 공단인지 모르지만 자신을 달라고 조른다. 처녀가 왜 달라느냐고 묻는다. 총각은 공단이면 망건 탕건을 만들어 쓰고 처녀 집으로 장가가려 한다고 말한다. 은근한 청혼인 셈이다. 처녀가 받아서 말한다. 장가 오는 것은 좋지만 집이 가난해서 우산도 갓모(비올 때 갓 위에 덮어 쓰는 우장)도 걸 데조차 없으니 눈이 올 때 오지 말라고 한다. 총각은 능청스럽게 말한다. 갓모는 깔고 자고 우산은 덮고 자자고. 그러면서 그들의 소박한 장래를 노래한다. 둘이 잘 때 꾸는 꿈은 무릉도화가 부럽지 않고, 같이 손잡고 거닐면 비바람도 문제될 것 없다고. 풍파 속의 세상, 당신과 같이 헤쳐 나가고 싶다고. 이런 총각의 적극적인 구애에 처녀는 장가들어 '어서' 오라고 맞장구를 친다.
얼마 전 지인 아들의 결혼식에 갔었다. 서울 유명 호텔에서 '벌어진' 호화 결혼식. 유명 가수의 축가와 수많은 하객과 식장을 뒤덮은 어마어마한 꽃과 근사한 서양식 식사. 양가 합쳐서 수억원은 족히 들었을 것이다. 이 정도 결혼식이라면 이미 그들에게는 서울 아파트의 값비싼 세간살이에, 비까번쩍(?)한 자동차 정도는 마련되어 있을 것이다.
하객으로 갔으면 당연히 축하해야겠지만, 혼주에게 축하한다고 말도 했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부러움과 질시가 함께 속삭이고 있었다. 물론 그들 신혼부부의 행복을 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수많은 가난한 신혼부부 혹은 예비 신랑 신부에게도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상투적인 이야기지만 결혼 후의 행복은 재물보다는 저 동부콩 처녀 총각처럼 같은 꿈을 꾸고, 비바람에도 거침없이 손을 잡고 나가, 갖은 풍파를 함께 헤쳐 나가는 데 있다고. 경험적으로 보면 돈은 결혼의 행복 조건은 아니라고. 결국은 둘의 사랑이라고.
많은 예비 신랑 신부가 항의할지도 모르겠다. 저 동부콩 처녀 총각은 가난하다 하더라도 그래도 둘이 같이 살 집 한 채, 방 한 칸은 있지 않느냐고. 맞다. 맞는 말이다. 맞는 말이기에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미안하다. 우리도 단칸방에서 시작해서 지금 이런 집에 살기까지 허리띠를 졸라맸다고 말할 수밖에 없어서 미안하다. 사실은 우리도 왜 이렇게 집값이 비싼지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살다보면 부부는 사랑이 있으면 살아진다고, 삶에 대한 긍정과 투지는 오직 가족에 대한 사랑이 밑천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어 미안하다.
가난한 신랑 신부들이여, 부디 행복하여라.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