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취재를 위해 러시아로 와 생활하면서 힘든 것 중 하나는 의사소통이다. 러시아 현지인들과는 대체로 영어로 소통이 안 되고, 월드컵 때문에 러시아로 출장 온 사람 상당수는 또 러시아어를 못하다 보니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적잖다. 거리와 숙소에서도 그렇지만 훈련장, 경기장 등에서도 마찬가지다. 그중엔 음식점도 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숙소 부근 음식점에 갔다. 메뉴판을 보고 음식을 주문하자 종업원이 러시아어로 '카드가 있느냐'는 묻는 것 같은 질문을 했다. 무슨 말인지 몰라 '모르겠다. 그냥 주문대로 해달라'고 했더니 이번엔 알아듣기 힘든 영어로 설명했고, '음식값을 할인해주는 카드가 있다'는 애기 정도로 이해가 됐다. 그래도 어떤 카드인지 몰라 '필요없다'고 했으나 메뉴판에 적혀 있는 할인율까지 찾아 보여주며 진지하게 계속 카드 사용을 권하는 통에 결국 카드를 받아보기로 했다. 대충 '이 음식점에서 사용할 수 있는 선불카드고, 발급 즉시 바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정도로 이해했다.
잠시 후, 종업원은 카드를 가져와 건네주며 '카드에 적혀 있는 인터넷 주소에 들어가 가입을 하라'고 하는 것 같았다. 순간 '이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곧바로 카드를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이후 음식을 먹고 계산대로 갔다가 '꼬였다'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얼핏 봐도 주문한 음식 비용보다 훨씬 많은 요금이 청구돼 있었기 때문이다. 청구 내용을 확인해보니 카드 발급 비용도 포함돼 있었고, 그 카드값이 1천 루블(한화 1만7천여원) 정도인 것을 알았다. 음식값의 20%를 할인해주는 카드 발급 비용이 1천 루블이었던 것이다.
이에 '카드를 받지 않았다'며 원래 가격대로 다시 계산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계산대 직원은 요지부동이었다. 이미 계산서를 출력했기 때문에 안 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녀의 강경하다 못해 전투적인 태도 때문에 계산대 앞에선 약간의 소동이 일었고, 급기야 그 음식점 종업원들이 몰려들었다.
우리도 이에 맞서 물러서지 않았다. 다툼으로까지 번질 수 있는 상황으로 이어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1천 루블이라는 돈도 돈이었지만 기분이 좋지 않았던 탓이다. 우리의 계속된 강력한 '카드값 제외' 요구에 그 카운트 직원은 뭔가를 알아보러 가는 듯 '잠시만'이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자리를 비웠다.
의외로 사태 수습은 순간적이었다. 이 기회를 놓칠새라 다른 종업원들이 재빨리 카드 발급 비용을 뺀 할인 전 음식값으로 새로 계산서를 출력해줬고, 우리가 현금으로 계산하면서 사태는 급마무리됐다.
애초 카드 발급 대화 당시 영어로도, 러시아어로도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결과였다. 종업원은 할인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열심히 설명하는 친절을 베풀었지만 소통의 한계 탓에 유쾌하지 않는 해프닝을 경험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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