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른 아침에] 자유한국당 해산하고 새판 짜라

“보수 핵심은 가치 지키기 위한 변화”
캐머런 전 英 총리 13년 만에 재집권
한국당 반성하는 ‘쇼’조차 구태의연
철학 부재 정당 헤쳐 모이는 게 정답

한국경제사회연구회 이사. 사우스웨스턴대 대학원 법학 박사
한국경제사회연구회 이사. 사우스웨스턴대 대학원 법학 박사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 보수 정당 혹은 보수주의에 관한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인용되는 인물이다.

캐머런 전 총리는 보수주의의 핵심은 "소중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변화해야만 한다는 데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시대의 흐름을 읽고 그에 맞춰 변화해야만 보수 정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2005년 39세의 나이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정당인 영국 보수당의 대표가 되었다. 토니 블레어 총리의 노동당과 총선 대결 3연패, 4번의 당 대표 교체 등 위기에 처한 보수당의 선택이었다. 이른바 '온정적 보수주의'의 기치 아래 당을 재건한 그는 2010년 총선 승리로 40대 총리가 되면서 13년 만의 보수당 재집권에 성공했다. 캐머런의 성공 비결에 대해서는 숱한 연구가 나와 있다. 내 생각은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메시지와 메신저에서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것.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메시지)와 그것을 전달하는 사람(메신저), 두 가지 모두에서 국민 설득에 성공한 것이다.

캐머런은 철저한 보수주의자이다. 마거릿 대처 전 총리의 보수주의 노선에 충실한 정치철학을 가지고 있다. 자유시장 경제, 개인의 자유와 창의를 기본으로 작은 정부와 감세를 지지하고, 경제 성장과 규제 개혁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러나 그는 대처의 카리스마와 리더십과는 다른 면모를 보였다.

영국의 무상의료체계인 NHS 개혁에 관한 그의 어법이 대표적이다. "우리는 NHS를 축소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적자만 축소할 것입니다." 개혁은 지지하지만 무상의료체계가 근본적으로 흔들릴 것을 걱정하는 영국인의 심중을 정확히 읽은 것이었다. 대처를 좋아하면서도 직설적이고 전투적인 이미지의 대처리즘에 염증을 내는 국민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대처는 훌륭한 경제 개혁가였습니다. 나는 근본적인 '사회 개혁가'가 되겠습니다. 대처가 무너진 경제를 바로잡았다면 나는 '무너진 사회'를 고치겠습니다."

6·13 지방선거에서 패배한 자유한국당의 진로를 놓고 백가쟁명, 백화제방, 말들이 무성하다. 하도 많은 진단과 처방들이 나와서 더 할 말이 없을 정도다. 망설임 끝에 결국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한국당은 더 이상 희망이 없어 보여서다.

선거 국면에서 한국당은 메시지와 메신저 모두 실패했다.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메시지도 없었고, 설사 있었다 해도 신뢰를 잃은 메신저의 말에 귀를 기울일 사람도 없었다. 홍준표 전 대표에게만 책임을 돌릴 일도 아니다. 선거 후 보여주는 행태는 누가 대표였어도 마찬가지였을 게 분명하다. 반성하는 '쇼'조차 감동을 주지 못하는 구태의연함 그 자체다.

많은 사람의 말처럼 한국당은 보수 정당이 아니었다. 겉으로는 보수 세력을 표방했지만 정치권 패거리 집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김성태 원내대표 말대로 지긋지긋한 친박·비박 싸움을 여전히 벌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완전히 불탄 집터에서 집문서 놓고 멱살잡이를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외부인사 영입, 쓸모없는 혁신안 마련, 당명 개정, 색깔 바꾼 신장개업. 아무리 되풀이한들 한국당의 환골탈태를 믿을 국민은 없다.

완전히 바꿀 자신이 없으면 차제에 해산 후 헤쳐 모이는 게 정답이다. 내부에서 총질하느라 시간과 정력을 낭비할 이유가 없다. 친박당, 비박당으로 따로 모여 서로 건전한 경쟁을 벌이는 게 훨씬 나을 수 있다. 서둘러 변화하는 척 눈속임할 필요도 없다. 철학 부재, 이념 부재로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의 집단은 정당이 아니다. 보수 정당은 더더구나 아니다. 캐머런 전 총리도 동의하는 명제일 것이다.

노동일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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