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취색 바다와 메밀꽃', 언제부터인가 펼침막이 호미곶을 지나는 도로변에 나붙었다. 생뚱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미곶이 무슨 봉평도 아니고 메밀꽃이라니? 싱거운 사람이 선거철에 장난치는 줄 알았다. 그러나 한두 곳도 아니고 지나다니는 길목마다 펼침막이 나타나서 호기심을 자극했다.
차를 세우고 길 위로 나서보았더니 와우! 별세상이었다. 호미곶에는 보리밭과 유채만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새천년 광장 주변 들녘이 온통 하얀 메밀꽃이었다. 도래솔을 품으며 펼쳐진 메밀꽃도 장관이지만 곰솔 숲 너머에서 출렁거리는 바다와 어우러진 메밀밭은 가슴까지 철렁이게 하였다. 지금까지 보아온 호미곶 풍광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일부러 달이 뜬 날 밤에 나가서 과연 소금을 뿌려놓은 것 같은지를 확인해 보기도 하였다. 달빛이 내려앉은 메밀밭은 무슨 말로 표현해야 할까. 매혹적이었다.
몇 차례 드나들며 이색적인 정경을 보고는 그 모습을 자랑하고 싶었다. 휴대전화기로 사진을 주고받는 게 익숙하지 않았지만 동서남북으로 방향을 잡아 가며 여러 장을 찍었다. 그 자리에서 이곳저곳 친한 사람들에게 보냈다. '호미곶 비취색 바다와 메밀꽃을 보러오세요' 라는 문자와 함께.
사진을 받은 사람들마다 '가까운 곳에 이런 모습이 있느냐'며 메밀꽃 구경을 오겠다고 하였다. 그 이튿날부터 친지들이 찾아오기 시작하였다. 시절이 하지 무렵인지라 퇴근하고 와도 해는 중천이었다. 해넘이와 함께 메밀밭에서 오랜만에 사진을 찍었다. 물론 온다는 연락을 받으면 바로 나가서 안내를 맡았으며, 사진이 잘 나오는 곳을 짚어주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주말이면 아예 몇 팀이 오겠다는 연락을 주기도 하였다. 지난 주말에는 한꺼번에 여러 가족이 오는 바람에 서로 낯선 이들끼리 시간을 함께 보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메밀꽃을 핑계로 한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들도 찾아왔다. 일부러 오지 않으면 또 몇 년이 흐를 것 같아서 애써 달려왔다고 하였다.
누가 어떻게 조성한 메밀밭인지는 모르겠지만 활짝 핀 그 꽃 덕분에 톡톡히 손님을 치고 있다. 우리는 반갑게 만나서 꽃을 보며, 오랜만에 꽃처럼 활짝 웃으며, 꽃 가운데서 사진을 찍었다. 가슴 가득히 숨을 들이마시며 활짝 웃어 본 기억이 가물가물하다고 하였다. 무엇이 그리 바쁜지 짬 내기조차 어렵다고도 하였다. 이렇게 소소한 일상을 나누며 함께하는 게 행복인데 우리는 너무 바빠서 그런 꽃을 피울 시간조차 잊고 사는 것만 같다.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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