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10년 이상 가족들에게 받은 학대 상처 안고 희귀병 투병 중인 손혜원 양

다섯 살 무렵 부모 이혼 후 심각한 성적·육체적 학대에 노출돼…학업도 부득이 중단
어머니 만나 안정 찾았지만 뇌혈관 좁아지는 모야모야병 진단… 수술비 등 4천만원 마련 막막

손혜원(가명·19) 양은 부모님의 이혼 후 아버지와 할머니로부터 극심한 학대를 당했다. 5년 전 어머니 품에 오며 점차 안정을 찾고 있지만 최근 뇌혈관이 좁아져 뇌졸중을 유발하는 모야모야병 진단을 받았다. 두 차례의 수술이 예정된 가운데 치료비는 4천만원을 넘길 것으로 보인다.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손혜원(가명·19) 양은 부모님의 이혼 후 아버지와 할머니로부터 극심한 학대를 당했다. 5년 전 어머니 품에 오며 점차 안정을 찾고 있지만 최근 뇌혈관이 좁아져 뇌졸중을 유발하는 모야모야병 진단을 받았다. 두 차례의 수술이 예정된 가운데 치료비는 4천만원을 넘길 것으로 보인다.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늘 낭떠러지를 등지고 서 있는 기분이었어요. 달아나려해도 달아날 수 없는…. 아버지가 뒤쫓아온다는 공포 속에서 매 순간을 버텨야했죠." 손혜원(가명·19) 양이 아버지에게 당해온 학대들을 담담히 풀어냈다. 두 눈을 꼭 감고 애써 눈물을 참던 어머니 박순주(가명·41) 씨의 어깨가 파르르 떨렸다. 이내 고개를 돌린 박 씨가 소리죽여 흐느꼈다.

◆10년 넘게 이어진 아버지의 학대…할머니, 고모들도 가세

손 양이 다섯살 되던 무렵, 부모는 이혼을 하고 각자의 삶을 선택했다. 이후 손 양은 할머니, 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일정한 직업이 없고 술을 좋아했던 아버지는 손 양에게 악몽 그 자체였다. 아버지는 손 양의 초등학교 입학 무렵부터 성적·육체적 학대를 일삼았다. 손 양은 "술에 취해 온몸을 더듬는 아버지를 말리면 '내가 아빠인데 뭐 어때'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며 "열두 살 무렵부터는 술상을 집어던지고 술병으로 바닥을 내리치거나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퍼붓는 게 일상이었다"고 했다.

할머니와 두 명의 고모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할머니는 손 양이 밥을 제대로 짓지 못했다고 밥솥을 던지거나 술에 취해 칼로 위협하는 등 폭력을 휘두르곤 했다. 그래도 성에 차지 않으면 고모들과 합세해 손 양을 심하게 구타했다.

아버지는 손 양이 탈선을 한다는 망상까지 갖고 있었다. 친구 집에서 숙제를 하고 와도 마구 때렸고, 학교를 가지 못하게 막았다. 잦은 결석으로 손 양은 두 차례나 중학교에서 유급했다.

손 양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는 술에 취한 아버지를 피해 문고리를 잠글 수 있는 작은 방에서 잤다. 아버지가 어머니의 사진을 다 태우고 찢어버렸는데 그곳에 남아 있는 어머니의 사진 다섯 장을 몰래 보는 게 유일한 위안이었다"고 털어놨다.

숨죽여 참고 지내던 손 양은 아버지에게 심하게 맞은 5년 전 어느 날, 평소 연락이 닿던 어머니를 찾아갔다. 당시 손 양의 아버지는 폭력을 휘두르는 과정에서 유리문을 발로 차 다쳐 병원에 입원한 상태였다. 어머니는 두 번째 결혼으로 아이가 있었지만 손 양을 따뜻하게 품었다.

◆차츰 되찾아가던 정서적 안정…희귀병 진단으로 다시 벼랑 끝

아버지의 학대에서 벗어나면서 손양은 천천히 심리적 안정을 되찾았다. 중학교를 검정고시로 졸업했고 방송통신고등학교에서 학업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길을 걷다가도 아버지와 닮은 사람과 마주치면 제자리에 주저앉아 하의를 적실 정도로 마음의 상처가 깊었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5개월 전, 손 양이 희귀병인 모야모야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 것. 모야모야병은 뇌혈관이 자꾸 좁아져 뇌졸중을 일으키는 희귀 질환이다.

사실 이상 증상은 이미 9살 무렵부터 나타난 상태였다. 온 몸에 힘이 풀리고 열이 나다가 두통과 함께 팔·다리가 마비되는 증상을 겪었지만 무관심과 학대 속에 방치되던 손 양은 치료는 커녕 제대로 된 진단조차 받지 못했다.

그나마 5개월 전부터 잦은 고열로 입원을 반복한 끝에야 정확한 진단을 받았다. 손 양은 현재 뇌혈류량 회복을 돕는 뇌수술을 미룰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나쁘지만, 38~39℃를 넘나는 고열이 이어져 수술을 미루고 있다. 이미 각종 검사비로 400만원이 들었고 앞으로 두 차례 이어질 수술비로만 3천600만원이 들 예정이다.

수술비로 목돈이 필요하지만 네일숍을 운영하던 어머니 박 씨는 심한 허리 디스크질환으로 일을 그만둔 상황이다. 두번째 이혼을 한 박 씨는 손 양 외에도 열 살과 세 살 난 두 아이를 돌봐야한다.

박 씨는 지난해 6월부터 기초생활수급비로 한 달에 120만원을 받고 있지만 4천만원에 달하는 손 양의 수술비는 마련할 길이 없다.

수술비도 문제지만, 손 양은 수술 후에도 사지마비나 언어능력 저하 등 후유증을 겪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하지만 손 양은 두려움을 꿋꿋이 이겨낼 생각이다..

"엄마는 걱정말고 엄마만 믿으라고 하시고, 제 앞에서는 울지 않으셔서 더욱 마음이 아파요. 치료를 잘 받고 엄마와 오래오래 살면서 많은 걸 해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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