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탈(脫)코르셋

미국 영화 '캐리비언 해적'에서 여주인공은 코르셋 때문에 숨이 막혀 기절한다. 나중에 그녀는 해적을 때리면서 이렇게 말한다. "고통이 뭔지 알고 싶어? 그럼 코르셋을 입어봐!"


여성용 코르셋은 16세기 프랑스에서 처음 등장한 뒤 서구사회로 번졌다. 코르셋이 몸에 가하는 압력은 엄청나다. 당시 유럽에서는 코르셋 때문에 갈비뼈가 부러져 숨지거나 재채기를 하다가 죽는 여성들이 속출했다.


오스트리아 프란츠 요제프 1세의 아내 엘리자베스 황후는 유럽 왕족 가운데 허리가 가장 가는 사람이었다. 19인치 허리를 유지하기 위해 그녀는 코르셋을 늘 착용했다. 황후는 무정부주의자의 칼에 찔려 죽으면서도 코르셋 압박 때문에 통증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고 전해질 정도로 코르셋에 집착했다. 나폴레옹은 코르셋 혐오론자였다.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그는 이렇게 썼다. '코르셋은 인류를 멸종시키는 암살자다. 이 교태스러운 옷 그리고 저급한 취향이 여자를 고문하고 살해하고 그들의 미래 자손을 파괴한다. 코르셋은 지독한 퇴폐주의의 산물이다.'


코르셋은 강요된 아름다움, 억눌린 여성성의 상징물이다. 요즘 세계적으로 '탈(脫)코르셋'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이달 초 서울에서는 여성 10명이 상의 탈의 시위를 벌여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예쁘게 보이는 것 자체를 거부한다며 화장 지우고 머리를 짧게 자른 인증샷을 찍어 SNS에 올리는 여성들도 많다. 탈코르셋 운동은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가 여성에게 가한 억압과 폭력에 대한 반작용이다. 성 평등 사회로 가는 길목에서 탈코르셋 운동의 가치는 충분하다.


하지만 아름다워지려는 심리를 삐뚤어진 여성성으로 재단해 비판하고 탈코르셋 대열 동참을 강요하는 분위기도 없지 않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각자의 취향은 존중받아야 한다. 타인에게 탈코르셋을 강요하는 것은 새로운 형태의 '코르셋'일 수 있다. 이런 모순에서 벗어나야 탈코르셋 운동은 더 빛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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