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장]근데 사실 조금은 굉장하고 영원할 이야기

성석제 소설가

성석제 소설가
성석제 소설가

여름 저녁 동네 카페에서 노트북을 앞에 놓고 앉아 있노라면 여기저기서 이런저런 대화가 들려온다. TV 속에서 유명 시사평론가가 하는 말이든, 이웃의 탁자에서 들려오는 대화이든 그것은 글(文)이 아닌 말(言)이다.


그런데 이런 말과 대화, 이야기 속에 '없어도 되는 것'들이 글 쓰는 게 직업인 내 귀에는 유난히 잘 들려온다. 말과 글은 같은 언어에 속해 있으니 어쩌면 간섭하기 좋아하는 친척처럼 누가 해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머릿속에서 교정, 교열이 진행되는 것이다. 그런 것들의 예에는 '아니…근데…있잖아…어떻게 보면' 같은 '발어사'나 간투사가 있다.


이런 것들은 대개 '쓸데없는 군더더기 말'이라는 뜻의 췌사(贅辭)에 해당하나 전혀 뜻이 없는 건 아니다. 말과 취사선택된 단어에는 그것을 쓰는 사람의 태도가 엿보이게 마련이다. 그 사람이 논리적인가, 수동적인가, 능동적인가, 과시형인가, 실속형인가…. 습관적으로 '아니', '근데'를 반복하는 사람은 타인에 비해 논리적이고 타인을 설득하여 자신과 같은 편으로 이끌거나 논파하려는 성향이 있는 것 같다. '있잖아'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유형이다. '어떻게 보면'은 자신의 주장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에 대비하는 신중함이 느껴진다.


대화에 흔히 동원되는, 유행을 타는 부사어들도 있다. 단독적으로는 특별한 의미를 갖지는 않지만 앞뒤의 단어, 형용사, 동사 등을 부연하고 강화시키는 효과가 있다. '진짜(정말), 엄청나게(엄청), 조금(약간), 굉장히(굉장하게), 사실(사실은, 사실상)' 같은 것들이다. 진실성을 강조하고(진짜, 정말, 사실), 그것이 거창하고 의미가 큰일임을 설득하기 위해 과장하며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살짝 결정을 유보하거나 보험을 들어놓는다(조금, 약간은). 간투사와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의 이야기 한 문장에 어떤 부사어가 얼마나 들어가는지 관찰하다 보면 그 사람의 성향을 혈액형보다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발어사나 간투사, 부사어는 그 자체로는 큰 의미가 없다. 뒤나 앞에 오는 '본체'를 수식하고 강조하는 효과가 있을 뿐이다. 그 본체라는 것 또한 특별할 게 없다. 이미 스마트폰 속의 뉴스나 언론과 SNS의 이슈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소비되고 말았거나, 단지 자극적이고 이목을 끌기 쉽다는 이유로 우리의 삶과 별 관련이 없으면서도 우리의 주의력을 강탈해간 것들이다.


요점은 사람들이 나누는 '그 이야기의 본질은 내용이 아니고 이야기 그 자체'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화를 하기 위해 적당한 화제로 '본체'를 등장시킨다. 중요한 것은 서로 이야기를, 대화를 하고 있다는 것 바로 그것이다.


대화는 지속된다. 세상이 두 쪽 나도, 저녁을 먹은 뒤 여름 밤의 산책과 카페에서의 나직한 이야기와 두런거림은 영원히 지속되어야 마땅하다. 그것은 얼마전까지 서로 잡아먹을 듯 으르렁대던 두 나라 정상끼리의 역사적 회담 못지 않게 중요하다. 비록 그것이 "아니…진짜…그래서…그러니까…아주 조금…굉장히…있잖아…사실은…말이지"로만 남는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사람과 사람 피아 간의, 지성체 간의 대화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귀중하고 단 한 번, 한 순간뿐인 우리의 삶이자 비전이며 성스러움에서 비루함까지 인간 세상의 표리를 명경처럼 반영하는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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