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버지의 묵시록/여혁동 지음/시선사 펴냄.

아버지의 묵시록 책 표지
아버지의 묵시록 책 표지

아버지의 묵시록/여혁동 지음/시선사 펴냄.

시인이 되고 싶었으나 문학과 담을 쌓은 채 40년 세월을 살아온 남자가 흰 머리를 이고서야 다시 시를 만났다. 여혁동 시인(65)은 고교시절(경북고) 열혈 문학청년이었다. 시가 마냥 좋았기에 혼신을 다해 문예반(돌탑)활동을 하고 동인지와 교지를 펴내는 일에도 열정을 쏟았다. 대구시내 여러 고등학교 학생들과 어울려 시화전을 열고, 밤을 하얗게 새우며 문학을 이야기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시절이었다.

시를 쓰고 싶었으나 가야 할 길은 달랐다. 그 시절 청년들이 그랬듯 여혁동 시인 역시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해야만 할 일을 했고, 대학 졸업 후 35년을 증권사와 투신사에서 일했다. 퇴직 후 2015년 '시선'으로 등단했으며, '홀로 다 채운 허공'에 이어 올해 6월 두 번째 시집 '아버지의 묵시록'을 펴냈다.

◇ 마중물만 채워놓고 '시 우물' 떠나

여혁동 시인은 시와 이별한 채 살아온 세월을 '성실한 가장의 삶' 이라고 설명했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눈코 뜰 새 없이 일만 했다고 했다. 성실성과 책임감을 인정받아 증권회사 최연소 지점장(33세)이 되었고, 35세에는 이사가 되었다. 아직 그 기록은 깨지지 않았다고 한다.

'허기진 골목을 울어 할퀴던 바람의 모음

구멍 난 문틀에 얼어붙은 자음을 끌어안았고

야무진 심장 헐고 마중물 부어

마중글 저어가던 소년은

삼천리를 후리던 허기와 한파의 기세에

동그라미 다섯을 끝으로

위국의 산업화와 민주화에 우선 충당되었고

평생을 자본시장에 달라붙어 혼신의 펌프질로

삼만 불짜리 훈장하나 달고 예편되었다'

-서시- 중에서

시에 나타나듯 지은이의 학창시절 꿈은 시인이었다. 그는 자신의 청소년 시절을 '마중글 저어가던 시절'로 묘사한다. 문학에 입문하던 시절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당시 우리나라의 시대적 요청은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가난을 해결하는 일에 시 혹은 시인이 할 수 있는 역할은 크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시대가 요청하는 생활인의 길을 걸어갔고, 초로의 나이를 지나 그토록 갈망했던 시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 긴 세월 흘러 변해버린 시 풍경들

"퇴직한 뒤, 접었던 꿈을 다시 펼치겠다고 작정하고 서점에 가서 요즘 나오는 시집을 읽었어요. 현대시 경향을 알고 싶었거든요. 시가 너무나 많이 변해 있었어요. 학창시절 우리가 썼던 형식과는 전혀 달랐어요. 마치 시인 이상의 시를 처음 접했을 때처럼 난해하고 혼란스러웠어요."

학창시절 마중물을 흥건하게 부어놓고 떠났는데, 바쁘고 치열하게 살아온 세월을 끝내고 이제는 부지런히 펌프질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우물도 펌프도, 시인의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길도 낯설기만 했다는 말이었다.

"대구교육대 평생교육원에서 개설한 시창작 강의에 등록하고 무작정 수업을 들었어요. 거기 오시는 분들은 대부분 삼삼오오 짝을 이루거나, 친구 혹은 지인들 추천으로 오시기 때문에 서로 아는 경우가 많지만 저는 혼자 수업을 들었습니다. 오직 시를 다시 배우겠다는 마음, 시를 쓰겠다는 열망으로 공부했습니다. 그렇게 매달리다보니 어느덧 저 아래 깊은 곳에서 시의 물길이 움직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 나이 육십에 이룬 시인의 꿈

여혁동 시인은 육순에 시 전문 계간지 '시선' 신인상에 당선되면서 시인의 꿈을 이루었다. 그리고 두 권의 시집을 냈다.

육순에 등단했으니 옛날로 치면 많이 늦은 나이다.

구석본 시인은 그러나 "이른 나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늦은 나이라고 할 수도 없다. 1970년대만 해도 문단 흐름은 2, 30대 등단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많이 변했다. 40대에 등단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5, 60대에 등단하는 경우도 드물지는 않다. 심지어 70대에 등단하는 시인들도 볼 수 있다. 무엇보다 등단에 적령기가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단언컨대 나이는 작품 활동과 상관관계 없다. 창작 열정과 성실함, 진지한 자세만 있다면 언제나 청년이다. 그런 점에서 여혁동 시인은 청년 시인이다"고 말한다.

◇ 가족·종교·자연 등 주변과 일상이 소재

첫 시집 '홀로 다 채운 허공'과 마찬가지로 두 번째 시집 '아버지의 묵시록'에도 가족애를 노래한 작품들이 많다.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머니를 추억하는 시, 부부간의 사랑과 갈등, 자식과 손주에 대한 뜨거운 사랑 등을 절제된 시어로 드러낸다.

'생전에 별 말씀 없이

그저 그냥 묵묵히 사셨는데

목청 아래 심연 깊숙이 수장된 채

평생을 가위 눌렸던 가장의 절규가

인고의 침묵을 뚫고 수면 위로 치솟아

떠나신지 한참 된 이제야

사랑의 종소리로 울려 퍼지고 (중략)

절규가 어색해 침묵으로 숨기시던

이제야 들리는 그 종소리

흉터가 민망해 멍에 아래 감추시던

이제야 보이는 그 무지개

그때는 없었던 아버지의 무덤

그때는 몰랐던 아버지의 묵시록.

- 두 번째 시집 '아버지의 묵시록'에 실린 '아버지의 묵시록'-

◇ 난해한 요즘 현대시와 달리 공감 제공

여혁동 시인의 시선은 자기 삶의 가까운 곳을 향하고 있으며, 그 눈길에는 애정이 가득하다. 사소해 보이는 일상 안에 숨어 있는 의미를 찾아낸다. 평이하고 일상적인, 때로는 진부한 소재를 갖고 높은 시적 성취를 보여주는 것이다.

구석본 시인은 "여혁동 시인의 시는 요즘 시단의 난해한 작품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으면서도 문학적으로 높은 완성도를 갖추고 있다" 며 "독자들과 상당히 멀어진 현대시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 지를 잘 보여준다"고 말한다.

일남이의 고열을 들쳐 업고

새벽을 날아 구른 아버지의 들숨과 날숨은

코끝에서 가빠 허파로 흐르지 못하고

일남이보다 더 뜨거운 콧김으로

병원 문을 두들겼다

- '아버지의 강' 중에서-

아이가 고열이 나서 한밤중에 병원을 찾아가는 일은 어느 집에서나 한두 번쯤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이 작품은 아이의 고열을 시작으로 시인의 감성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여준다.

아파서 열이 오른 아이보다 더 뜨거운 콧김을 내뿜으며 병원 문을 두들기는 장면에서 독자는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과 걱정이 얼마나 뜨겁고 절절한 지 생생하게 그려볼 수 있다.

'아버지의 묵시록' 에는 총 4부 72편의 시가 가족, 삶, 자연, 찬양을 주제로 묶여 있다. 특히 제4부는 찬양의 시편들로 구성돼 있다. 지은이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기독교적 사랑과 구원 봉사를 여러 시 작품에서 보여준다.

여혁동 시인은 시전문 계간지 '시인시대'의 편집자문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문예계간지 '시선'의 기획위원과 시선작가회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123쪽, 9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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