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민심이 바뀌었다

바닥 민심이 확실히 바뀌었다. 자유한국당의 뼈아픈 패배와 더불어민주당의 짜릿한 약진으로 대변된다. 613 지방선거에서 확인된 대구 기초의원 결과는 대구 민심의 변화를 단적으로 설명한다. 대구시장, 기초단체장, 대구시의원은 여전히 한국당 후보가 대부분 당선됐다. 민주당 후보들이 선전했지만 당선과는 거리가 있었다.
기초의원에 대한 표심은 달랐다. 대구 기초의원 116명의 소속 정당을 보면 한국당 62명(53%), 민주당 50명(43%)이다. 바른미래당 2명, 정의당과 무소속이 각 한 명이 당선됐다. 4년 전 새누리당은 87명(75%)이었고, 새정치민주연합은 13명(11%)에 불과했다. 한국당의 참패와 민주당의 약진이 수치로도 확인된다.
기초의원의 역할은 제한적이다. '무늬만 지방자치'인 제도적 한계에다 조례 제정, 예산 및 행정심사 권한도 적다. 기초단체 견제도 쉽지 않다. 정치적 무게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정당 조직 차원에서 보면 다르다. 기초의원은 당원들과 밀접한 데다 정당의 뿌리 역할을 한다. 가지와 잎이 마를 경우 잘라내면 그만이지만 뿌리가 썩으면 나무 전체가 고사한다. 정당도 마찬가지다. 뿌리가 튼튼한 정당은 지금은 어려워도 미래를 기약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단명한다.
이번 선거 결과를 보면 민주당이 대구에 뿌리내리기에 성공했다. 혹자는 문재인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 덕분에 얼떨결에 당선됐다고 폄하하지만 간단히 볼 일이 아니다. 기초의원은 국회의원, 기초단체장과 달리 생활정치가 가능하다. 주민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며 소통하고 공감대를 넓혀가면 '특정 정당' 소속 여부는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민주당 수성구의원을 거쳐 대구시의원에 당선된 강민구 당선인의 말이다. "유권자들이 처음에는 민주당이라고 하면 머리에 뿔이 달린 짐승인 줄 알더라. 자주 소통하니까 자신들과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데 놀라더라." 생활정치가 끌어낸 변화다.


지역 정치 주도권을 두고 벌어질 싸움 양상도 달라지게 됐다. 한국당은 공중전을 통해 기득권을 유지해왔다. 보수적인 민심의 일방적인 지지를 받은 당에 기대어 편하게 정치를 해 왔다. 앞으로는 민심을 얻기 위해 민주당 기초의원들과 치열한 백병전을 벌여야 한다. 한 표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끼게 될 것이다.


동시에 수구 냉전적인 사고에 뼛속 깊이 젖어 있는 한국당이 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2년 후 총선에서 자멸의 길로 갈 가능성이 높다. 개인적으로 한국당 스스로 환골탈태할 가능성에 큰 기대를 걸지 않는다.


희생과 헌신의 보수 가치를 망각하고 남북 대결 구도와 성장 지상주의, 온정주의에 매몰 돼 변화보다는 기득권 유지에 급급하면서 쌓인 고질병이 심각한 수준이다. 외과 수술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유권자와 정치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 당 일각에서 차기 총선 '전원 불출마' 시나리오도 나오지만 소설 같은 얘기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96년 15대 총선을 앞두고 자기와 입장이 달랐던 김문수, 이재오 등을 발탁한 창조적 파괴 수준의 리더십을 보여줄 지 회의적이다.


지방선거를 치르면서 대구경북(TK)은 한국당의 인공호흡기가 됐다. TK가 손을 떼는 순간 사망선고를 받을 옹색한 처지에 빠졌다. 이는 TK 지지자들의 역할을 역설적으로 말해준다. 당이 창조적 파괴를 할 수 없다면 인공호흡기 자격을 가진 TK 지지자들이 집요하게, 거칠게 변화를 요구해야 한다. 끝내 변하지 않으면 버려야 한다. 시간이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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