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 칼럼] 서러운 '원전 경북'

남북·북미 정상회담에다 지방선거, 그리고 월드컵까지…. 지난 몇 달 사이 우리 국민들 앞에는 드라마 같은 일들이 잇따라 펼쳐졌다. 개인적으로 그중 백미를 꼽으라면 단연 4월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정상의 도보다리 벤치 회담이다. 하늘색 다리 위에서 새울음을 배경음 삼아 밀담을 나누는 두 정상의 모습은 무성영화 속 주인공 같았다.

두 정상 간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금세라도 통일이 이뤄질 것 같은 희망에 온 국민들의 가슴을 뛰게 했다.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는 청와대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고 있다.

그런데 김정은 위원장의 입에서 확실하게 나온 말은 비핵화도 통일도 아닌 '발전소 문제'였다는 주장이 이곳저곳에서 나오고 있다. 김 위원장의 입 모양을 자세히 분석한 결과 '전기', '발전소'라는 단어가 분명하다는 거다.

그렇다면 김 위원장이 비핵화의 대가로 '전기'를 요구한 게 분명해 보인다. 취임 전부터 탈원전을 주창하던 문재인 대통령으로서는 다소 '뜨악'했을 수도 있다. 김 위원장의 요구(?) 때문인지 한때 청와대가 탈원전 출구전략을 짜고 있다는 소문도 돌았다. 그러나 최근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으로 소문에 그치는 모양새다.

가장 손쉽게 전기를 만들 수 있는 원전은 문재인 정부 들어 빠르게 시동이 꺼져 가고 있다. 원전 전문가들을 인사 조치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단다. 불과 1년 새 벌어진 일이다.
최근 들어 월성 1호기를 조기 폐쇄하는 등 탈원전 시간표까지 앞당겨지고 있다. 24개 원전 중 이미 8개가 멈춰 서 있다. 수십 년 동안 공을 들여 쌓아 놓은 수출생태계도 파괴되고 있다. 한때 원전을 수출하면서 '신의 축복'이라는 등 온 나라에 원전 찬가가 울려 퍼질 때를 생각하면 상전벽해다.

문제는 경북도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는 것이다. 원전사업 중단으로 경북에서 10조원에 이르는 경제적 손실이 발생하고 연인원 1천200만 명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란 분석이다. 지난달 경북도가 원전가동 중단 및 신규원전 건설 중단에 따른 원전의 지역 사회경제적 비용 분석에 따른 결과다.

13조원 규모의 동해안 원자력 클러스터 조성 사업도 발목이 잡힌 상태다. 값싼 전기를 공급해 우리나라 산업에 영양분을 공급해왔던 경북으로서는 심한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그동안 경북은 원전의 메카이자 원전 인재의 산실이었다. 경북 동해안에는 국내 가동 원전 24기 중 절반인 12기가 있고 울진군에는 2기가 건설 중이다. 2012년부터 본격적인 원전 인재 양성에 돌입해 1천400여 명의 전문 인재를 양성하기도 했다.

원전으로 미래 먹거리와 일자리를 창출하려던 경북도 역시 다급해졌다. 당장 동해안 일대에 추진 중인 원자력 클러스터 조성 사업의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이철우 경북도지사 역시 당선과 동시에 급히 동해안으로 달려가 대책을 마련하려 했지만 아직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원전 문제는 아무리 지방정부가 발벗고 나서더라도 해법을 마련하기 쉽지 않다. 힘도 없을 뿐더러 현 정부의 탈원전 의지가 워낙 강한 탓이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기에는 지역이 입는 피해가 너무 심하다. 나름의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일단, 폐로 등 탈핵 정책에 대비한 원전해체산업 육성 및 유치를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 그리고 강하게 요구해야 한다.

그동안 경북에서 만든 전기가 수십 년간 대한민국을 먹여 살렸으니 그에 상응하는 선물은 당연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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