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종교칼럼 ] 통일은 배려부터

박병욱 목사
박병욱 목사

아내와 선을 보고 얼마 후 결혼을 약속하고 만남을 이어갔다. 나는 대학원생이고 아내는 직장인이었다. 어느 날 아내는 나에게 조심스레 봉투를 건넸다. 그 돈으로 데이트 비용을 나보고 결제하라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데이트 비용을 남자가 지불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는데, 우리의 경우 데이트 비용을 여자가 지불하게 되니 그 모습이 어색하다는 것이다. 사실은 자신이 매번 카운터에서 결제하는 모습이 혹시라도 내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을까 하는 배려였다. 나는 배려심 있는 여자와 결혼하여 지금까지 잘 살고 있다.

독일 통일 전 동독 사람에게 서독 땅은 미지의 세계였다. 동독 주민이 서독을 방문하면 서독 정부는 1인당 100마르크의 현금을 선물로 주었다. 1989년 국경선이 열리자 동독 시민이 밀물같이 몰려들어서 100마르크 선물을 받기 위해 은행 창구 앞에 길게 줄을 서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서독에 왔으면 먹어야 하고 자야 하는데 그들에게 넉넉한 돈이 없지 않은가? 서독 정부가 동독 방문자의 처지를 배려해 준 것이다.

동독 방문객들이 타고 온 트라비 자동차마다 뒷유리 안쪽에는 큼지막한 바나나 송이가 놓여 있었다. 동독은 공산주의 체제라서 서방세계와 무역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바나나는 아주 귀한 과일이었다. 그러니 서독 정부로부터 일인당 100마르크 선물도 받았겠다 가장 먼저 값싸고 커다란 바나나를 샀던 것이다. 난생 처음 먹어보는 바나나가 얼마나 맛있었을까?

독일의 주변 국가들 모두, 미국과 구소련까지도 독일의 통일을 예상치도 못했고, 반기지도 않았다. 독일은 전범 국가가 아닌가. 독일에는 '우리의 소원' 노래도 없었고, 통일 이데올로기도 없었다. 동독 라이프치히의 촛불 시위 현장에서도 여행자유화를 외쳤을 따름이다. 그 어디서도 꿈에서조차 통일을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1990년 10월 3일 독일 통일이 공식적으로 선포되었다. 그만큼 독일 통일은 예상치 못한 기적이었다.

나는 독일 통일 당시에 유학생으로 독일에 있으면서 혼자 예상하기를 당시 30세 이상의 기성세대는 시장경제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최근에 읽은 한 보고서에 의하면 통일 당시의 기성세대는 물론이고, 14~15세에 통일을 맞은 사람들조차도 현재 중년의 나이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체제에 적응을 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지금도 독일은 구동독 지역의 경제를 회복하기 위해 매년 1000억 유로 이상의 돈을 지불한다.

우리도 남북통일을 준비하려면 해야 될 의무가 많다. 어떤 사람은 우리의 내수시장이 커진다고 밝은 전망을 하지만 북한이 구매력을 갖춘 시장이 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통일은 국경선만 없어진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달랐던 문화와 삶이 하나가 되고, 경제 수준과 정치 시스템이 하나가 되고 또 역사적 경험이 하나가 될 때만이 진정한 통일은 찾아올 것이다.

먼저 우리 마음 속에 북한 주민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을 때 진정한 통일이 올 것이다. 최근 한 TV에서 한 강연자가 통일시대의 유망 직업이 부동산 중개업이라 했다. 문제 많은 천박한 시각이다. 통일이 되더라도 상당기간 북한 땅은 북한 주민만이 소유할 수 있도록 법 제정을 하게 될 것이다.

희생과 배려가 개인적인 덕목에서만이 아니라, 제도 속에서도 실현되어야 우리나라에 미래가 있다. 북한 주민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배려의 마음을 먼저 준비하자.

박병욱 대구중앙교회 대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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