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의 창] 평화와 통일을 위한 우리의 자세

홍은영 대구가톨릭대 교양교육원 교수

홍은영 교수
홍은영 교수

김정은 위원장 '판문점 발표문'에
핏줄 혈통 민족 강조 부담감 느껴
감성에 호소 판단 흐리게 할 수도
남북 이질성·내부 차이 고려해야

지난 4월 27일 남북 양 정상이 손잡고 군사분계선을 넘나들며 산책과 회담을 하는 장면은 많은 사람에게 뜨거운 감동을 주었다. 양 정상이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 정착을 위해 발표문을 읽던 모습 역시 매우 주목할 만한 일이었다. 4·27 남북 정상회담은 이 회담을 지켜보는 동시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감동과 즐거움 그리고 평화에 대한 기대를 안겨준 분명 특별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그러한 감정은 남북 정상회담으로 온라인에서 '핫'하게 되었던 평양냉면과 대동강 맥주의 인기에서도 엿볼 수 있다.

필자는 언론이 중계한 남북 정상회담을 실시간으로 볼 수는 없었지만 저녁에 다양한 채널을 통해 정상회담 소식을 접하면서 감동을 받았고, 정상회담 전 개최된 '봄이 온다' 공연을 시청하면서도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문화 교류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은 한반도의 비핵화와 남북 관계에 대한 희망을 전달해주었다. 그러한 희망은 공동 번영과 활발한 남북한의 교류(문화예술, 여행, 경제 등)에 대한 기대를 포함하고 있다. 또한 남쪽, 특히 서울은 대학을 포함하여 많은 분야에서 이미 '포화' 상태에 있기 때문에 북한을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보고 남북 교류와 대북 사업 관련 기회를 엿보는 기대감도 들어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번 남북 정상회담을 보고 희망을 느끼는 동시에 김정은 위원장이 '판문점 발표문'에서 강조한 표현을 들었을 때, 복잡 미묘한 감정과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필자 역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바라지만, '하나의 핏줄, 하나의 언어, 하나의 역사, 하나의 문화를 가진 북과 남', '한 혈육, 한 형제, 한민족'과 같은 말을 들었을 때, 무언가 무거운 부담감과 폭력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것은 북한 체제로의 흡수 통일의 폭력성을 뜻하는 것을 넘어, '핏줄' '혈통' '하나' '민족'이라는 말이 듣는 사람의 감성을 호소하여 이성적 판단을 흐리게 할 수 있고, 이러한 단어들 자체가 폭력적 측면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혈통' '민족'이라는 개념은 국민국가의 역사적 과정에서 타자와 비동일자를 내부에서 배제시키면서 자신의 단일한 정체성을 구성해왔다. 동질적인 '자신'이라는 정체성은 자기동일적이지 못한 이질적, 혹은 자신에게 상반되기 때문에 배제된 속성을 (무)의식적으로 배제하고 거부하면서 획득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민족' '혈통' '하나'의 호명과 단일한 정체성의 옹호는 엄연히 역사 속에서 존재했지만, 이름을 가지지 못했고 그들의 개별적 삶의 특수성을 배제하는 대가로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필자가 독일 유학시절 포스트식민 이론을 배우는 세미나에서 일본계 독일의 영상 작가이자 저술가인 히토 슈타이얼의 '텅 빈 중앙'이라는 영상의 한 부분을 감상한 적이 있었다. 그 영상은 독일 베를린 장벽 흔적을 담은 '포츠다머 플라츠'(포츠담 광장)를 둘러싼 8년간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변화를 카메라에 담고 있다. 이때 그녀는 베를린 도시의 변화를 주류에서 배제된 소수자의 목소리와 관점에서 보여주고 있다. 1997년 독일은 냉전시대를 상징하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곳에 포츠다머 플라츠를 조성하였고, 대규모 도시 개발 사업을 추진하였다. 국가의 강한 중심의 형성이 전 세계 유명기업이 투자하고 세운 현대식 고층 빌딩 건설과 같은 세계적 구조화와, 외국인에 대한 사회정치적 경계 짓기가 함께 이뤄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 '민족'을 강조하기보다, 남과 북의 이질성과 내부의 차이를 늘 고려하고 존중하는 보편적 인식과 사회적 풍토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

홍은영 대구가톨릭대 교양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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