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는 줄고, 경기는 바닥에서 헤어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더욱 암울한 건 불투명한 내일이고, 더 팍팍해질 삶이다."
시'도민들이 내린 대구경북 현실에 대한 진단이다. 실제로 대구는 서울, 부산에 이은 '3대 도시'란 타이틀을 잃어버린 지 한참이다. 60여 년 넘게 '보수 본진'이라며 가져왔던 자부심은 보수 정당의 몰락과 함께 땅에 떨어졌다.
하지만 다시 일어서야 한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국채보상운동을 통해 어려움에 처한 민족에 희망을 줬고, 독재 정권 앞에서 청년 학생들이 앞장서서 2'28운동을 통해 4월 혁명을 견인했던 대구다. 다시 한 번 비상을 꿈꿔야 한다.
그러려면 과거의 묵은 때를 벗겨내야 한다. 그리고는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 시'도민들은 지금이야말로 '리셋'(reset'시스템에 오류가 발생했을 때 초기화하는 것) 버튼을 눌러야 할 때라고 명령하고 있다.
2017년 3월 10일 오전 11시 21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이정미 당시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담담한 목소리로 주문(主文'결론)을 읽었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이 일로 대구경북의 정치 시계는 멈췄다.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80% 투표율에 80% 지지율로 그를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최선봉에 섰던 대구경북(TK)은 그야말로 큰 충격에 빠졌고 혼란에서 쉽사리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마저 구속되면서 TK 정치의 기반을 '제로 베이스'에서 다시 다잡아야 한다는 주문이 쏟아지고 있다. 정치가 경제'사회'문화까지 영향을 미치고, 특히 그런 정치에 의존해왔던 TK는 지역 출신 두 전직 대통령의 '불행'과 함께 추락했고, 이제는 새로운 길을 찾아야만 하는 상황에 봉착했다.
◆정치적 편식이 부른 위기 경보
TK의 위기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특정 정당 몰아주기 등 정치적 '편식'은 TK를 점점 '외로운 섬'으로 고착시켰다. 이는 사회'경제'문화 등 전 부문에 걸쳐 더딘 행보를 잇게 한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는 글을 통해 "대구경북이 전국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이라는 말이 회자된 지 오래됐다. 재정자립도마저 전국 최하위에 머물러 있다. 이곳이 살기 싫다고 떠나는 사람이 많아 인구마저 줄어들고 있다. 청년들은 대학을 졸업해도 일자리를 찾지 못해 외지로 빠져나가고 있다. 생산경제는 활력을 잃고 소비경제도 위축되어 일자리가 날로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이 지역의 폐쇄적인 독점적 정치 구도가 초래한 비극이다"고 지적했다.
그의 진단대로 TK 정치 체질은 과거 보수 정권의 온실 속에서 약해질대로 약해졌다. TK는 '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지는 두 정권 탄생의 주역으로서 자부심을 한껏 드높였으나 중앙에서의 경쟁력과 존재감을 키우지 못했고 자생력을 퇴보시킨 채 인재 발굴 등 미래에도 대비하지 못했다.
TK 정치권은 그동안 1인 리더십에 의존하고 1당 독주 체제에 안주했다. 13대 민정당, 14대 민자당, 15대 신한국당, 16'17'18대 한나라당, 19대 새누리당으로 '옷'만 갈아입었을 뿐 일당 독점 체제를 유지했다. '공천'에만 목을 맸을 뿐 정치력 제고나 지역 발전에 대한 절실한 노력은 뒷전이었다. 보수 정당 내에서의 경쟁력은 물론 진보 진영과의 경쟁 기회를 얻지 못하면서 힘을 기를 동력을 찾지 못한 셈이다.
◆정치적 무능과 결별할 때
지역민들은 지역 경제가 끝없이 추락하는 현실에서 통합공항 이전 등 각종 현안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TK 정치권이 이제부터라도 자생력을 길러 지역 발전을 견인해 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TK는 박정희 정권 이후 보수 정권 창출의 주역으로 꼽혔지만 지역 경제는 붕괴돼 1984년부터 지금까지 지역내총생산(GRDP)에서 줄곧 꼴찌를 면하지 못했다. TK 정치권에 대한 '각성'과 함께 지역 발전을 위한 '역할'을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그간 지역 정치권의 무기력함은 해묵은 지역 현안을 풀지도, 해결의 실마리도 마련치 못했다. 이로 말미암은 피해는 지역민들의 몫으로 돌아오고 있다.
지난 6'13 지방선거 과정에서 오중기 전 더불어민주당 경북도지사 후보는 "그동안 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진 보수 정권이 TK를 패싱한 결과가 현재의 모습이다. TK 국회의원들은 도대체 무엇을 했는지 궁금하다"고 일갈했다.
당시 이철우 한국당 경북도지사 후보의 "서해' 남해안은 개발이 완료돼 (산업시설과 인프라 등이) 빼곡하지만 동해안은 고속도로 하나, 철도 하나 없다. 포스코 빼고 텅 비었다. 경제'민생 실패, TK 패싱을 견제할 보수 정치의 회복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이었다.
이는 정치적 논쟁일 수도 있으나 지난 10년간 보수 정권 아래서 표심을 얻은 지역 정치권의 실정(失政)을 자인한 것은 아닌지 곱씹어 볼 부분이다.
최근 대구에서 불거진 취수원 이전 문제는 정치권의 무능과 무관심이 빚어낸 사례다. 대구 취수원을 구미시 낙동강 상류로 이전하는 문제는 대구시민의 오래된 소망이었으나 지역 정치권은 지방자치단체 간 눈치 보기를 핑계 삼아 손을 놓은 채 오랜 시간을 허송했다.
중앙 정부를 압박하고 지역 간 갈등 조정에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정치권의 무능에 따가운 비판이 쏟아지는 것은 당연지사다.
TK 정치권은 새로 취임한 부산시장'울산시장'경남도지사가 폐기된 가덕도 신공항 건설안을 다시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또 한 번 시험대에 올랐다. 이들의 주장에 TK 의원들은 총력 저지를 천명했지만 여당 지도부는 PK 기반을 다지기 위해 가덕도 신공항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여기에 한국당 PK 의원들도 가덕도 신공항 재추진에 가세하면서 가덕도 신공항 이슈는 'TK vs PK 신(新)지역 갈등' 양상으로 번질 기세다.
'보수 본산'임을 고집했지만 진보 진영에 정권을 내주고서 힘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지역 정치권이 무수한 지역 현안을 풀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문재인 정권의 주요 보직 인선과 하마평에 TK 인사 등판론은 쉽사리 들리지 않는다. 이미 현 정부 1년 동안 정부 부처 고위공무원뿐 아니라 공공기관장 인사에서도 TK는 변방으로 밀려났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추경호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대구 달성)이 공기업 35곳, 준정부기관 93곳, 기타 210곳 등 공공기관 338곳을 전수조사한 결과 5월 기준으로 문재인 정부가 임명한 공공기관장 152명 중 대구 출신은 3명(1.9%), 경북 출신은 14명(9.2%)에 그쳤다. 추 의원은 "이 문제는 단순히 지역감정을 자극하거나 TK가 차별받는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국정, 공공 분야, 예산 등 대한민국 곳곳에서 TK가 지워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역민들은 "이대로는 안된다는 자각이 새로운 TK 시대를 열 수 있다"며 "부끄러운 과거와 결별할 때 새로운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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