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여성들이 멈추면

북유럽의 아이슬란드는 1975년 10월 24일 사실상 마비됐다. 여성 노동인구의 90%가 이날 하루 노동 활동을 멈췄기 때문이다. 당시 아이슬란드 여성들은 40%나 되는 성별 임금 격차에 항의하는 뜻으로 파업에 동참했다. 학교와 보육원, 마켓이 문을 열지 못했고 항공기도 대부분 결항했다.


아이슬란드 여성 총파업은 여권 운동사의 기념비적 사건이다. 이후 이 나라에서의 여성 인권은 비약적으로 신장했다. 1976년 남녀고용평등법이 국회를 통과했고 1980년에는 세계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뽑혔다. 2017년 현재 아이슬란드는 세계경제포럼(WEF) 양성평등지수 세계 1위를 8년째 유지하고 있다. 당시 아이슬란드 여성 총파업의 구호가 인상적이다. "우리가 멈추면 세상도 멈춘다."


43년 후인 올해 국제여성의 날(3월 8일)을 맞아 이 구호는 스페인에서 재등장했다. 스페인의 여성 총파업은 노동 활동뿐만 아니라 소비 활동으로까지 보이콧 영역이 넓어졌다. 우리나라에서도 여성소비총파업 캠페인이 SNS 해시태그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7월 1일을 시작으로 매월 첫째 일요일마다 여성들이 최대한 소비를 하지 말자는 것이 골자다.


여성소비총파업은 여성을 수동적 소비자로만 여기는 사회적 인식을 바로잡고 성차별적 기업 광고에 대항하겠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의 여권 운동이 탈(脫)코르셋, 몰카 사건 편파 수사 항의 시위에 이어 소비총파업 양상으로까지 다양화되고 있는 점은 주목할 만한 사회현상이다. 물론, 소비가 무슨 파업의 대상이냐, 여성이 하는 일이 고작 쇼핑이냐는 등의 논란도 없지 않다. 인터넷 커뮤니티 반응을 봐도 부정적 댓글들이 상당수다.


혹자에게는 목하 벌어지는 일련의 여성 운동들이 마뜩잖을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여권 운동들은 국가 양성평등지수가 세계 116위인 국가 현실에 대한 반작용으로 이해해야 한다. 도를 넘어서는 여권 운동과 남성 혐오도 문제지만 이를 성(性) 대결 구도로 비화시키는 것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 세상의 절반은 여성이고, 여성 없이 인간 세상은 절대로 돌아갈 수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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