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은 대구 야구사에서 기념비적인 해다. 정확히 반세기 전인 1968년 경북고 야구부의 전국대회 5관왕을 기점으로 대구가 일약 구도(球都)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후 대구상고 야구부가 우승 행진에 가세하면서 대구는 1970년대 한국 고교야구의 폭발적인 흥행을 주도했고, 대구고 야구부까지 고교야구 최강자 자리에 어깨를 나란히 하며 이들 3개 고교는 한국 야구의 명실상부한 산실(産室)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영광의 시대
'대구 야구의 아버지'로 불리는 고 서영무 감독(전 삼성 라이온즈 초대 감독)과 '야구 천재' 고 임신근 코치(전 삼성 라이온즈 선수 및 코치)을 앞세운 경북고가 1967년 대통령배와 청룡기에서 우승하며 대구 고교야구 전성시대의 포문을 열어젖혔다. 이는 1950년대 인천, 1960년대 중반까지 서울이 주름잡던 전국 고교야구판을 완전히 뒤흔든 사건이었다. 이듬해인 1968년 대통령배, 청룡기, 황금사자기, 4개 도시 초청 및 6개 도시 초청 고교야구대회 등 5개의 우승기를 경북고가 모조리 휩쓸자 대구·경북 지역엔 전에 볼 수 없던 야구 열풍이 불어 닥쳤다.
1970년엔 대구상고 야구부가 20년 만에 청룡기 우승을 거머쥐며 경북고의 독주체제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1971년 경북고가 당시 봉황기 MVP를 받은 에이스 남우식의 활약을 바탕으로 대통령배, 청룡기, 황금사자기, 문교부장관기, 봉황기, 화랑기 등 전국대회 6관왕이라는 전무후무한 신화를 달성하자 대구상고도 이에 질세라 1973년 강태정 감독과 장효조를 앞세워 대통령배, 황금사자기, 봉황대기에서 3관왕을 차지했다.
1981년 경북고의 지휘봉을 잡고 전국대회 4관왕의 신화를 쓴 구수갑 대구시체육회 고문은 "당시 지역 고교가 전국대회를 우승하면 선수들이 2군사령부가 제공한 지프차 15대를 나눠 타고 동대구역에서 대구역을 거쳐 남문시장까지 카퍼레이드를 벌일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다"면서 "프로야구가 없던 시절 경북고와 대구상고가 전국대회를 독식하면서 대구는 야구의 성지나 다름없었다"고 말했다.
◆침체의 시대
1983년 프로야구 출범을 전후해 대구 고교야구의 전성시대도 막을 내리기 시작했다. 과거와 같은 전국대회 석권은 사라졌고, 드문드문 단일대회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정도가 됐다. 구수갑 고문은 "1980년부터 3년간 대구·경북 고교들이 전국에서 유일하게 지역 중학생을 대상으로 신인 드래프트를 시행했는데 이것이 전력의 하향 평준화를 불러왔다"며 "대구 고교의 독식이 사라지자 군산상고, 광주일고, 천안북일고, 경남고 등이 우승을 나눠 갖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후 90년대까지 이어진 대구 고교야구의 침체기는 2000년대 대구고 야구부의 선전으로 짧은 중흥기를 맞는다. 2003년 박석민을 필두로 한 대구고가 대통령배에서 창단 이래 첫 우승을 차지하며 그간 경북고와 대구상고가 양분하던 지역 고교야구계에 다크호스로 우뚝 선 것이다. 2008년엔 정인욱의 활약 속에 청룡기와 봉황대기 2관왕을 차지하며 대구고는 명실상부한 고교 최강자로 우뚝 서게 된다.
2010년 대구고의 봉황대기 우승, 2015년 대구상고의 청룡기 우승 및 경북고의 봉황대기 우승 등 2010년대엔 3개 학교가 나란히 한 번씩 전국대회 우승을 맛봤다. 또한 구자욱(대구고), 최충연(경북고), 최채흥(대구상고) 등 뛰어난 선수들을 꾸준히 배출시키며 프로야구의 산실(産室)로도 그 명성을 여전히 유지 중이다. 가장 최근엔 대구고가 지난 5월 황금사자기 결승까지 올랐으나 광주제일고에 아쉽게 패하며 준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희망의 시대
최근 고교야구에 대한 지역민들의 관심은 30여 년 전과 비교해 격세지감이 따로 없다. 매해 최다 관중 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프로야구와는 비교조차 불가능할 수준이다. 고교야구가 2011년부터 주말리그로 치러지고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기에 대붕기(매일신문 주최) 등 전국의 지역신문사들이 주관하는 대회가 폐지되면서 지역 고교야구를 알릴 기회마저도 사라졌다.
더욱이 최근 들어 고교야구의 수도권 쏠림 현상도 심화되고 있다. 지난해 4개 전국대회 우승은 서울고, 덕수고, 배명고, 야탑고 등 모두 서울·경기의 고교의 몫이었다. 이종두 대구상고 감독은 "기본적으로 서울에 야구부가 있는 중학교만 23개교나 된다. 서울 유력 고교들이 야구 인재들을 싹쓸이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반면 대구는 중학교도 4개에 불과할뿐더러 선수들이 3개 고교로 분산돼 선수 자원에 제한적인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과거와 같은 전국대회 석권은 현실적으로 어려워지고 있지만 대구 고교들의 미래가 마냥 어두운 것은 결코 아니다. 경상중 감독 시절 11차례나 전국대회 우승을 맛본 손경호 대구고 감독은 "지역 중학교에서 유망주들이 꾸준히 나오고 있고 대구고 등 지역 고교로 진학하고 있다"며 "우승에 연연하기보단 이들 유망주를 잘 지도해 훌륭한 야구 선수로 성장시키는데 초점을 맞추면 성적은 자연스레 따라올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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