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취재현장] 어떤 보수를 재건하시겠습니까

홍준표 기자 정치부
홍준표 기자 정치부

"진짜 이 정도일 줄 몰랐다."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진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로 최근 국회에 입성한 자유한국당 초선 의원이 첫 의원총회에 참석한 소감이다. 그는 이날 차마 눈 뜨고 있기 어려운 참혹한 모습을 봤던 모양이다.

모두가 알고 있듯 한국당은 지난달 13일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재앙이나 다름없는 참화를 겪었다. 17개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두 곳(대구시장, 경북도지사), 226곳의 기초자치단체장 선거에서 53곳밖에 건지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대구경북과 제주를 제외한 14개 광역자치단체를 장악했고, 기초자치단체는 151곳을 차지했다.

충격적인 성적표에도 한국당은 선거 뒤 첫 의원총회에서 쇄신을 위한 어떠한 생산적 방안도 도출하지 못했다. 초·재선 의원들은 지난 10년간 보수정치의 실패 책임이 있는 중진에게는 정계 은퇴를, 당을 제대로 이끌지 못한 중진에게는 당 운영 전면에 나서지 말 것을 요구하는 등 누구 하나 '내 탓이오' 하는 이 없이 '네 탓'만 했다.

이어지는 상황도 가관이다. 한국당에게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다. 선거 참패의 의미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계파 싸움이 한창이다. 지난달 29일 열린 혁신 비상대책위원회 구성과 관련한 문제를 논의하고자 소집된 의원총회에서도 친박(친박근혜)·비박(비박근혜), 잔류파·복당파로 갈려 악다구니를 부리는 통에 정작 의제는 다뤄지지도 못했다. 이러니 혁신 비상대책위원장 물망에 오른 이 가운데 일부가 '구제 불능'이라며 손사래를 칠 수밖에.

일련의 상황을 지켜보며 서울 한 대학에서 정치학을 가르치는 지식인은 "이 사람들이 도대체 어떤 모습으로 보수를 재건하겠다는 것인지 당최 알 수가 없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한국당이 완전히 방향을 잃어버린 배가 됐다고 봤다. 궁금증이 도져 조심스레 물었다. 정치학자의 눈에는 이들에게 내일이 있을지.

그는 여느 정치평론가와 다른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한국당에 인적 청산이 이뤄지지 않는 한 미래는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그는 '가치'를 말했다. 그는 "한국당이 됐든 다른 정치집단이 됐든, 기치와 깃발이 분명하면 사람들이 따라가게 되어 있다"며 "민주당은 성장 과정에서 인권, 상생, 평화, 분배 등 정책과 관련된 가치를 점유했다. 반면 한국당은 도대체 어떠한 가치를 점유하고 있느냐"고 했다. 이어 "지금은 그 기치와 깃발을 세우기도 전에 뭉치자고 하는데 무엇을 가지고 뭉치냐는 것이냐. 답답하다"고 했다.

이 말을 곱씹으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한국당이 유일하게 점유해 온 가치는 안 보였다. 이 유일한 가치가 최근 남북관계 변화에 무너져 내렸다. 안보의 목적은 평화가 아닌가. 정부와 여당이 평화를 실현하겠다는데 "위장평화 쇼"라고 공세를 펼치니 국민이 보기에는 빈정거림이고, 딴죽을 거는 것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말한다. "당신들(한국당) 따라가면 무엇이 있느냐고 국민이 묻는 거야. 당신들이 가자는 곳으로 가면 어딘데? 그게 안 보이니깐 사람들이 안 가는 거야."

광야에 초인이 홀연히 나타나고, 초인이 다른 계파보다 나를 먼저 신세계로 이끌어주기를 기대하기에 앞서 스스로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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