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단독]김병준 인터뷰…문재인 정부야 말로 국가주의의 온상

보수의 새로운 가치 정립'실현이 시급한 숙제

김병준 국민대 명예교수가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 식당에서 정국에 대한 생각을 밝히고 있다. 홍준표 기자
김병준 국민대 명예교수가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 식당에서 정국에 대한 생각을 밝히고 있다. 홍준표 기자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김병준 국민대 명예교수는 3일 "문재인 정부가 겉으로는 자율과 분권을 강조하면서도 국가주의에서나 나올 법한 행보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날 매일신문과의 단독 인터뷰를 통해 현 정권을 비판하는 한편 보수세력의 재건을 위해 "새로운 가치 창출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 정권이 말로만 자율과 분권을 외친다고 비판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 문재인 정부는 겉으로 지방분권과 자율성을 강조하고 있으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국가주의적 성격이 강하다. 예를 들어보면 연방제에 가까운 지방분권을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얼마 전 대한민국 모든 초'중'고에 커피자판기를 설치하지 못하게 하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고, 대통령도 법령 개정을 위해 사인한 것으로 알고 있다.

연방제에 가까운 지방분권을 이야기하는 대통령이라면 이 같은 법안에 당연히 거부권을 행사했어야 한다고 본다. 학교에 커피자판기를 달든 말든, 이런 문제는 교장이 결정하거나 학교운영위 또는 교육감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일이지 왜 국가가 나서서 일률적으로 강제하는가. 또 그런 법안을 처리한다고 학생들이 커피를 안 마시는 것도 아니다.

만약 커피를 보온병에 담아 오면 어떻게 하고, 커피믹스 가져와서 따뜻한 물에 타 마시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이 법안 하나만 예를 들어도 현 정권의 자율성 강조는 큰 모순이다.

▶김 교수가 추구하는 '자율'이란 무엇인가?

= 구성원들의 합의 하에 사회 내 견제·감시 시스템을 갖춰 스스로 상호 견제하게 만들어야 한다. 분권주의자나 자율주의자라고 떠들면서 왜 걸핏하면 국가권력 칼자루를 쥐고 흔드는 일을 반복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적폐청산 작업도 국가의 감독기관을 총동원해 밀어붙이는 일을 서슴지 않고 있는 것 아닌가.

또 다른 예로 사립학교가 여러 가지 재정상 문제가 많다고 드러나면 그 재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서 학생·학부모가 언제든지 들여다 볼 수 있게 하면 끝나는 일이다. 재정투명성만 높이면 해결되는 일인데 왜 교육부가 감찰하고 나서는가. 이게 현 정권이 자행하는 국가주의적 성향의 본질이다.

나는 이런 체제로는 대한민국에 미래가 없다고 본다. 이념과 계층을 떠나 기본적으로 자율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병준 교수. 사진 홍준표 기자
김병준 교수. 사진 홍준표 기자

▶현 정권이 잘못하고 있는데도 보수세력이 몰락한 이유는?

= 진보 정당은 성장 과정에서 실수도 하고, 잘못도 하면서 정책과 관련된 가치를 점유해 왔다. 예를 들어 인권, 상생, 평화, 환경 등 이런 가치를 점유하고 있는 상태다. 현재 국민의 뇌리에 박혀 있는 진보정당의 지향점도 분배, 상생 뭐 이런 것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보수쪽에서도 저쪽이 내놓을 수 없는 새로운 가치나 현재를 보완하는 대안가치를 내놓아야 한다.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국민께 선명한 지향점을 제시할 수 없었고 차별성 부각에도 실패했다.

분명한 기치와 깃발을 꼽아야 사람들이 모인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지금도 다수 국민은 "당신들 따라가면 무엇이 있느냐"고 우리에게 묻고 있다. 서둘러 역사적 흐름에 맞는 우리의 가치를 정립하는 게 시급한 시점이다.

▶가치 정립만 되면 흥행에 성공할 수 있나?

=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 가치 정립과 그 가치를 실현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현 정권이 그동안 국민께 제시했던 가치들을 놓고 '실현 가능성' 문제를 따져보면 전혀 아니다.

인권, 상생, 공동성장, 균형발전 등의 아젠다를 위해 소득주도 성장이나 최저임금제를 도입했고, 이들 정책이 오히려 경제는 뒷걸음질치고 일자리는 줄어들게 만들고 있지 않은가. 가치를 실현시킬 능력이 안 되고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야당이 비판하면 국민은 다시 '비판을 위한 비판만 한다'고 눈살을 찌푸린다. 비판 다음에 나올 대안을 볼 수 없으니까 그런 것이다. 이 같은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가치 정립과 그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플랜을 병행해 제시해야 한다.

▶비대위원장으로 거론되는 사람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을 가장 잘 아는 인사로 꼽힌다.

= 국민 모두 이제는 잘 알고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다만 내가 조금 더 안다면 정책을 다뤄봤던 입장에서 정책적 맥락이라든가 허점을 알고 있다는 정도일 것이다. 이 정부가 만지고 있는 정책 가운데 참여정부 때 다뤘던 게 많으니깐 잠재적 가능성과 한계를 비교적 잘 안다고 할 수 있다. 참여정부 때와 사람도 다르고 정부도 다르니 100% 다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예를 들어 '정부가 하는 일이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지' 정도는 다른 사람보다 비교적 잘 안다고 할 수 있다.

▶대구경북민에 전하고 싶은 말은.

= 고향 사람들, 지금 자존심이 많이 상했을 것이다. 한국 정치사에서 대구경북이 이렇게 무력하게 무너진 적은 없었다. 그런 점에서 답답하다.

지금도 저에게 걱정을 전하는 분들이 많다. 정치적 논란을 불러올까 봐 자세한 이야기는 못 하겠지만 내가 아는 지역민은 강한 잠재력이 있다. 다시 뭉쳐 하나가 된다면 경제 성장의 주역이 됐던 시기처럼 새로운 대한민국의 또 다른 성장엔진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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