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장하빈의 시와 함께] 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장옥관(1955~ )

어디서 피어오르는가

물안개 물에서 피어나고 메아리 첩첩 산에서 울려퍼지듯 사랑은 어디서 피어오르는가

몸도 아니고 마음도 아닌 곳에서

눈물이 흘러나오듯

너 없이도 혼자 피어오르는 것이

또한 사랑이어서

저 혼자 삭고 삭혀서 술이 되어 노래가 되어 입술을 적시니

오늘 나 옛 노래의 청라언덕에 올라

대지에서 피어나는 흰 나리처럼

내가 네게서 피어날 적에, 네게서 내가 피는 것이 아니라 네가 내게서 피어오르는

기적을 만나느니

가지 꺾고 뿌리까지 파봐도

꽃잎 한 장 없는 나무에 봄마다 환장하게 매달리는

저 꽃들, 꽃들

―시집 『그 겨울 나는 북벽에서 살았다』 (문학동네,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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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아! 어디서 피어오르는가? 물 겹겹 물안개 피어나듯, 산 첩첩 메아리 울려 퍼지듯 그렇게 피어오르는가? 청라언덕에 피어나는 백합처럼 내가 네게서, 네가 내게서 피어나는 것은 기적이다. 마치 "가지 꺾고 뿌리까지 파봐도/ 꽃잎 한 장 없는 나무에 봄마다 환장하게 매달리는" 저 꽃들, 아니 저 꽃등처럼! 이러한 기적은 어디서 오는가? 바로 사랑이다. 저 혼자 피어올라 꽃등불로 세상을 밝히는 것이 다름 아닌 사랑이다.

시인이 박태준의 가곡 '동무 생각'의 배경이 되는 청라언덕에 올라 옛사랑의 기적을 노래한 절창이다. 시의 제목도 그 노래 가사 "청라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 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에서 빌려왔다. 박태준이 계성학교에 다니던 시절에 청라언덕에서 마주치곤 했던 한 송이 백합 같은 여학생을 마음에 심어 두고 "저 혼자 삭고 삭혀서 술이 되어 노래가 되어" 해마다 흰 나리꽃으로 피어나 대지의 입술을 적시는 것! 사랑의 기적이란 바로 그런 것 아닐까?

시인·문학의 집 '다락헌' 상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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