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가 읽은 책]100일 동안 떠다니라고 한다면!

『남은 생의 첫날』, 비르지니 그리말디, 열림원, 2015

새봄과 함께 여든 살 엄마의 시간이 갑자기 황폐해졌다. 엄마는 마냥 젊을 것처럼 생각하고 늙음을 대비하지 않은 놀라움이 컸던가 보다. 동생을 만나고 돌아오다, 저 먼 우주로 정신을 놓아버렸다.

다시 돌아오기 위해서 짧은 여행을 나섰다. 낯선 오세아니아주 섬들 중, 호주 오페라 하우스 광장에 섰다. 오페라 하우스의 서로 맞물리는 세 개의 조가비 모양의 독특한 천장을 배경으로 시간이 잠시 멈추었다.

서강 작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서강 작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남프랑스 보르도 출생인 작가 ‘비르니지 그리말디’의 처녀작 『남은 생의 첫날』의 마리가 친구들과 함께 손짓을 했다. 이 책은 2015년 프랑스 에크리르 오페미닌 문학상을 수상한 베스트셀러이다. 프랑스 여성들이 ‘꼭 나를 위해 쓴 소설 같다’고 2015년 소설 선호도 1위에도 올랐다. 작가는 어른으로 성장하지 못한 어른 아이들을 ‘고독 속의 세계 일주’로 안내한다.

여객선 펠리시타는 프랑스 가수 장자크 골드만의 노랫말을 따라 일곱 바다, 다섯 대륙, 서른여섯 나라를 100일 동안 떠돈다. “그때는 내가 그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너도 알아야 하지/ 내가 누구인지를”(329쪽). 마흔 살의 마리 마들렌느의 새로운 일도, 뚱뚱했던 과거 기억으로부터 자유를 꿈꾼 스물다섯 살 카밀 알레트 뒤발, 예순 두 살 안느와 도미니크의 행복한 결말은 모두 여행의 선물이었다.

평범한 주부로, 두 아이의 엄마였지만 지난 20여 년간 마리의 전부이자 삶의 지표였던 첫사랑 레오와의 결혼은 끝이 났다. “마리는 하늘을 날던 순간을 마음속으로 그렸다. 허공에 몸을 던지기 직전, 절벽 끝을 향해 가슴이 터질 듯 달려가던 순간이 떠올랐다. 하늘을 날며 그녀는 무한한 자유를 느꼈다. (중략) 그녀는 여덟 살의 어린 마리를 생각했다. 언젠가는 자신도 새들처럼 날겠다고 선언하던 그 어린 소녀를 …….”(60쪽).

“시드니에는 작은 만을 따라 이동하는 선박 안에서 식사할 수 있는 유명한 식당이 있었다. 레스토랑 맞은편 창으로 오페라 하우스가 보이고, 반짝이는 도시와 하버 브리지가 어두운 물 위에 투영되어 보였다.”(222쪽)

시계를 보며 삶이 끝나길 기다리는 엄마가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광장 앞에서 웃고 있다. 세계여행은 나만의 꿈이 아니었다. 아마도 엄마가 젊은 시절에 그리던 꿈 조각이 마리를 통해 낯선 얼굴로 내 앞에 선 것이리라. 돌아가 엄마를 만나고 싶다. 갑자기 작별하지 않아서 좋다. 함께하고 만지고 느껴 볼 수 있는 남은 시간들이 있음이 기쁘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나고 언제 괄호가 닫힐지 아무도 몰라요. 그러니까 이 순간을 놓치지 말아야죠!”(113쪽). 드디어 세 여자의 괄호는 모두 닫혔다. 여전히 모두의 일상이 똑같다 해도, 가끔은 길을 잃어도 좋다. 익숙함에서 벗어나 홀로 서는 그 날이 다시 오기를! 오늘부터의 새 여행에 카밀이 마리가 안느가 손 내밀어오면, 엄마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묻고 또 물어보리라.

“너무 가깝게 다가와 독자를 아프게 하고, 사색하게 만드는 작품” 이란 책날개의 소개는 결코 과장이거나 사탕발림이 아니었다.

 서강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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