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깨끗한 일본인

러시아 월드컵 경기장에서 세계인 모두가 감탄하는 일이 벌어졌다. 벨기에와의 16강전에서 2대 3으로 역전패한 일본 선수들이 라커룸을 먼지 한 톨 없이 청소하고 떠났다. 경기장 벤치까지 청소했고, 탁자에 '감사합니다'라는 메모까지 남겼다.

20대 혈기왕성한 청년들이 패배의 아픔을 추스르는 것은 물론이고, 굳이 안 해도 될 청소까지 했다니 믿기지 않을 정도다. 한국 선수 같으면 얼른 호텔에 가서 술을 먹거나 울면서 억울해할 터인데, 일본 선수들은 '인간이 아니무니다'라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그렇지만, 일본인의 삶을 알고 있는 이들이라면 그리 놀라지 않는다. 일본인은 어릴 때부터 부모에게 가장 많이 듣는 소리가 "他人に迷惑を掛けるな"(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지 마라)다. '메이와쿠'(迷惑)라고 줄여 부르는데, 민폐 끼치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문화다. 공원, 거리는 물론이고 공중 화장실까지 깨끗한 것은 이용자 스스로 청소하기 때문이다. '메이와쿠'와 함께 지저분한 것을 참지 못하는 '청결벽'(淸潔癖)도 일본 문화의 특징이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직전 일본과 소련과의 전쟁을 그린, 자전적 소설 '인간의 조건'(고미카와 준페이 작)에는 놀랄 만한 이야기가 나온다. 굶주리고 지친 일본군 패잔병 무리가 북만주에서 후퇴하다 마을을 발견했다. '일본인 개척단이 철수한 빈 마을이었다. 집 안은 마루방의 돗자리까지 걷어놓았고, 봉당에 쓰레기를 모아놓았다. 과연 일본인다웠다.' 일본인은 그렇게 급박한 상황에서도 청소까지 해야 직성이 풀리는 모양이다.

일본 가정을 방문한 한국인들이 놀라는 것은 '빈틈없이 깨끗하다'는 점이다. 창문틀이나 문지방에도 먼지 한 톨 없다. 주부들은 쉴 새 없이 쓸고 닦고 청소한다. 일종의 '강박관념' 비슷하다. 이를 두고 '다다미 문화(젖은 다다미는 금방 썩고 벌레가 생긴다)의 유산'이니 '결벽증 문화'라고 해석하지만, 공공질서와 청결 문화는 배워 둘 일이다. 그렇더라도, 한국인의 시각으로는 '참, 피곤하게 살아가는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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