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과 잘 지내기] 남혐 vs 여혐, 젠더 대결

거리로 나온 남혐 VS 여혐, 꾸준한 대화와 교육이 해결책

#대구 A중학교 체육시간. 이날 수업은 줄넘기를 5분 이상 하는 것. 대부분의 학생은 5분도 되기 전에 멈췄지만 유일하게 한 여학생만 살아남았다. 이 여학생은 6분이 넘게 뛰었다. 체육 선생님은 숨을 헐떡이며 그 여학생을 쳐다보는 남학생들을 향해 "여자가 어떻게 남자보다 더 잘하냐"라고 했다. 이 여학생은 체육선생님의 이 한 마디에 기분이 상했다고 했다. 양성평등에 어긋나는 발언이었다는 것이다.

#B중학교 체육시간에서는 100m 달리기 시합이 있었다. 체육 선생님은 신체적 약자인 여학생들을 고려해 남학생들보다 조금 앞에서 출발하도록 했다. 남학생 중 키가 작고 체격이 왜소한 한 학생이 선생님의 지시에 반발했다. 학생은 "나보다 더 키가 큰 여학생도 많은데, 성별로 출발 위치를 나누는 것은 오히려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라고 주장했다.

대구의 두 중학교 체육시간의 헤프닝은 최근 실제로 벌어졌던 일이다. 여혐·남혐으로 대변되는 최근 우리 사회의 성대결이 아이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다. 젠더 이슈를 둘러싸고 남성과 여성의 생각은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요즘처럼 '남녀 갈등'이 사회 전반에 확산되는 등 사회문제화된 적은 극히 드물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특히 홍익대 누드크로키 수업 나체 사진 유출사건과 스튜디오 비공개 촬영회 성추행 의혹사건에서 파생된 논란으로 '성 대결'이 더욱 고착화되고 있다. 일베, 워마드 등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촉발되던 성전(性戰)은 오프라인으로까지 나왔을 정도다. 여혐·남혐 대결이 왜 벌어지고 있으며, 어떤 사회문제를 야기하고, 해결책은 어떤 것이 있는지 등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지난달 2일 서울 강남구 페이스북코리아 사옥 앞에서 한 여성단체 회원들이 상의 탈의 시위를 하고 있다. 이들은 페이스북이 남성의 반라 사진은 그대로 두면서 여성의 반라 사진만 삭제하는 점을 규탄하기 위해 모였다. 연합뉴스
지난달 2일 서울 강남구 페이스북코리아 사옥 앞에서 한 여성단체 회원들이 상의 탈의 시위를 하고 있다. 이들은 페이스북이 남성의 반라 사진은 그대로 두면서 여성의 반라 사진만 삭제하는 점을 규탄하기 위해 모였다. 연합뉴스

◆거리로 나온 혐오, 남혐 vs 여혐
지난달 2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페이스북코리아 사옥 앞에서 여성단체 회원들의 반라 시위가 벌어졌다. 이들은 마스크와 선글라스, 가면 등으로 얼굴을 가리고 벗은 몸에 '내 몸은 음란물이 아니다'라고 적었다. 또 '내 의지로 보인 가슴 왜 삭제하나', '현대판 코르셋에서 내 몸을 해방하라'고 적힌 피켓을 들었다. 이들은 여성의 반라 사진을 삭제하는 페이스북의 규정을 규탄하기 위해 상의를 벗은 채 거리에 나선 것이다.

5월에도 홍익대 누드 크로키 수업 몰카 사건의 피해자가 남성이라 경찰 수사가 신속하게 이뤄졌다고 보는 여성들이 거리에 쏟아져 나왔다. 한 포털사이트 카페 여성회원 1만2천여명이 서울 대학로 일대에서 대규모 시위를 통해 "동일 범죄를 저질러도 남자만 무죄 판결, 워마드는 압수수색이지만 소라넷은 17년 방관"이라는 구호를 외쳤다.

올 초 서울 홍대입구역에서는 여성단체와 남성단체 회원 간 설전이 벌어졌다. 한 여성단체 회원 60여명이 홍대걷고싶은거리 여행무대에서 제천 여성 학살사건에서 네티즌들이 제천 여성 피해자들을 비하하는 게시글을 인터넷에 올렸다며 이들에 대한 처벌과 소방당국의 현장 상황에 대한 진상규명 등을 요구하며 집회를 가졌다. 이에 남성단체 한 회원이 이날 여성단체 집회를 반대하기 위해 1인시위를 벌이면서 경찰을 긴장케 한 것이다.

홍익대 누드 크로키 수업 몰카 사건 피해자가 남성이어서 경찰이 이례적으로 강경한 수사를 한다고 주장하는 여성단체 시위대가 규탄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홍익대 누드 크로키 수업 몰카 사건 피해자가 남성이어서 경찰이 이례적으로 강경한 수사를 한다고 주장하는 여성단체 시위대가 규탄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남자는 되고 왜 우린 안되나
페미니스트라고 자신을 소개한 20대 여성 김현지(가명) 씨를 만났다. 그는 "남자는 웃통을 벗으면 상남자 대접을 받는데, 왜 여자는 항상 가려야 하는가? 2000년대 들어 여성을 소비하는 콘텐츠가 넘쳐나기 시작하면서 편견이 더 심화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금까지 웃통을 한 번 벗어던진 적이 있다고 했다. 서울에서 열린 탈코르셋 시위 등에 참가하면서다. 그는 "외모 평가, 외모로 인한 차별 등 성적 대상화가 여성에게 더 심하게 작동하는 사회에 우리가 살고 있다"며 "이에 대한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탈코르셋 운동"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아직도 대한민국 사회의 양성평등 지수는 세계적으로 떨어진다. 이런 구조는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한 현대사회에 있어 모순덩어리"라고 지적했다.

실제 한국 사회의 성차별은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해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2017 세계 성 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 격차지수는 0.650점으로 총 144개국 중 118위였다. 에티오피아(115위), 튀니지(117위)보다 뒤졌다.

성 격차지수는 매년 각국의 경제·정치 등 4개 분야, 14개 지표에서 성별 격차를 측정한 수치다. 수치가 1에 가까울수록 양성평등을 이뤘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은 남성이 역차별받는 시대
취업준비생인 최모(31) 씨는 "넷페미들은 모든 문제의 원인을 남성에게서 찾는다. 양보 없이 뭐든 더 내놓으라는 식인데, 이게 말이 되느냐"며 "남성의 병역 의무나 취업 때 군 가산점 폐지 등 요즘은 남성이 오히려 역차별받는 사회"라고 반박했다.

그는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공공주차장 어디를 가더라도 '여성전용' 딱지가 붙어 있는 곳이 많다. 건물이나 빌딩에도 곳곳이 여성전용 공간이다. 또 여성가족부라는 부처는 있는데, 왜 남성가족부는 없는가. 여성들이 밖으로는 평등을 외치면서 안으로는 약자 운운하며 배려를 요구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꾸준한 대화와 교육으로 남녀 갈등의 격차를 줄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매일신문DB
전문가들은 꾸준한 대화와 교육으로 남녀 갈등의 격차를 줄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매일신문DB

◆꾸준한 대화와 교육이 절실하다
전문가들은 남녀 갈등을 줄이고 궁극적으로 양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법과 제도에 기댈 게 아니라, 문화와 인식개선이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특히 교육의 필요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최종렬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재 대학에서 여성학을 다루는 학과가 계속 사라지고 있다. 지역에는 계명대 외에는 여성학과가 있는 대학이 없다"며 "요즘 사회과학책 베스트셀러는 대부분 페미니즘을 다룬 책인데, 대학에선 페미니즘 관련 교양과목은 돈이 안 된다며 없애고 있다"고 했다. 최 교수는 "남녀 간 인식 전환이 가장 절실한 과제다. 대학교육을 활성화시키고 대화의 장을 많이 만들어줄 때 인식 전환이 이뤄진다"고 제안했다.

허창덕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이혼여성 지원제도, 육아와 양육을 위한 지원금 등 관련 법과 제도는 거의 다 있다. 따라서 법과 제도를 고쳐서가 아니라 여전히 성차별을 합리화하는 사회문화를 바로잡는 것이 중요하다"며 "언론과 교육의 중요성이 그래서 필요하다. 아울러 인식의 확장을 통해 남성과 여성은 대결상대가 아니라 공존해야 하는 존재라는 점을 자각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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