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의 창] 후쿠오카에서 듣는 '그리운 금강산'

고선윤 백석예술대 외국어학부 겸임교수

고선윤 백석예술대 외국어학부 겸임교수
고선윤 백석예술대 외국어학부 겸임교수

일본 사람이 그 맛 그대로 연주

한국 사람 노래 더하니 하나 돼

월드컵 독일전 승리 축하 세례

벨기에와 싸운 일본 응원 화답

전주에서는 국제영화제가 있었고, 영화제와 함께하는 음악회도 있었다. 나는 여기서 사회를 봤다. 끝나고 인사말을 할 기회가 있어서 "전주에서 대구 사투리로 사회를 본 나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하자, 큰 박수를 받았다. 대구를 떠난 지 몇십 년이 되었건만 말끔한 서울말이 서투른 사람이다. 그러니 전주에서의 대구 사투리는 나 자신에 대한 극복이고 영남과 호남의 화합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었다.

지난 6월 27일 밤, 후쿠오카 중심가에서 음악회가 있었다. 나는 여기서도 사회를 봤다. 일본과 오랫동안 무역업을 하는 나래코리아의 김생기 대표는 우리의 아름다운 음악을 일본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한국에서 음악가들을 모시고 일본의 음악가들과 함께 작은 음악회를 마련했다. 김 대표의 거래처 사람들만이 아니라, 이 홀을 자주 찾는 사람들까지 약 50여 명이 공간을 꽉 메웠다.

푸치니의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베르디의 '여자의 마음'으로 시작되었는데 모두 참 잘한다는 박수 소리가 넘치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공간이었다. 그런데 2부에서는 특별했다. '그리운 금강산'의 피아노 전주에 나는 소름이 돋았다. 후쿠오카에서 나고 자란 후쿠오카의 딸이 내가 알고 있는 그리운 금강산의 그 냄새 그 맛을 그대로 연주하는 것이 아닌가. 여기에 우리의 성악가가 노래를 더하니 일본인지 한국인지, 우리는 하나가 되었다.

이어서 메이지의 대표적 문학가 이시카와 다쿠보쿠 작시의 '첫사랑'이 일본말이라고는 무엇 하나 모르는 우리 성악가의 풍부한 음색으로 울려 퍼지니 모두 숙연해졌다. 26세에 요절한 슬픈 시인을 기억하는 것일까. 아니다, 저마다 가슴에 담은 첫사랑을 기억하면서 조용히 눈을 감는 듯했다.

"나의 첫사랑은 일본분이었습니다"는 말에 모두가 웃음을 나누고, "음악에는 국경이 없다"는 흔하디 흔한 멘트이지만 나는 이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남과 호남의 화합'에서 더 나아가 이제는 한일의 가교가 되고 있다는 자부심에 가슴이 벅찼다. "첫사랑의 아픔을 아련히 내 마음에 떠올리는 날"이라는 가사를 따라 부르고, 내 입에서 떠나지 않는 시간이었다.

6월 27일의 밤이다. 그렇다. 러시아 월드컵에서 한국이 FIFA 세계 랭킹 1위인 독일을 2대 0으로 이긴 바로 그날이다. 음악회를 마치고 이자카야에서 뒤풀이를 하는데, 구석에서 조용히 술을 마시던 우리 스태프 하나가 큰소리로 "대한민국이 독일을 1대 0으로 이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흥분해서 텔레비전을 켜라, 볼륨을 높여라 하는데, 또 한 골이 터졌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라 기쁨의 술잔을 돌리면서 일본 친구들은 우리를 축하한다고 했고, 우리는 아시아의 힘이 바로 이거라면서 일본의 8강 진출도 꿈이 아니라고 덕담을 나누었다.

축구라고는 커다란 둥근 공을 발로 찬다는 거 외에 아는 것이 없지만, 나는 지난 3일 새벽 8강 진출을 놓고 치러진 일본과 벨기에의 경기를 지켜봤다. 후쿠오카의 그 친구들과 공간은 달리하지만 같은 시간에 같은 장면을 보고 그들을 응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세계 3위 벨기에를 상대로 전반전부터 대등한 경기를 펼쳤고, 후반에 연속 2골을 넣으면서 8강 진출에 성공하는 듯했다. 그런데 벨기에는 만회골에 이어 동점골, 결국 추가 시간에 역전골을 성공시켰다. 일본 선수들은 경기장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일본에 골을 내준 벨기에의 분발을 촉구했고 벨기에가 추격골을 잇따라 터뜨리자 마치 한국팀이 골을 넣은 듯 흥분하는 생중계 해설자가 야속하기만 했다.

숱한 슬픈 이야기 속에서 선뜻 가까워질 수만은 없는 나라 일본이지만, 나래코리아의 작은 음악회에서 마음을 나눈 친구들을 생각하면서 열심히 싸운 일본 선수들에게 큰 박수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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