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는 도시공동체 곳곳을 연결하는 혈관이다. 도시인들의 일상과 경제활동은 모두 거리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거리 활성화가 도시 재생의 대표적인 전략으로 꼽히는 이유다.
그러나 대구시내 특화거리는 단순한 경관 개선 수준에 그친다는 비판이 높다. 수요 예측없이 비슷한 업종만 모여있으면 예산을 쏟아부어 우후죽순 조성하는 탓이다. 때문에 대구시내 구·군들이 지난 10여년 간 쏟아부은 예산만 900억원이 넘지만 성공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에 그친다.
◆'특화'없는 특화거리 난립
지난 6일 오후 대구 서구 비산동 서부시장 오미가미거리. 세 달 전 개장한 오미가미거리 내 청년상인골목은 을씨년스러웠다. 1시간 동안 지켜봐도 오가는 행인들만 몇몇 있을 뿐 가게를 찾는 손님들은 전무했다.
이 곳은 서구청이 침체된 서부시장을 살리고자 2억9천만원을 투입, 청년상인골목을 만들고 창업교육과 임대료를 일부 지원했다.
그러나 기대했던 상권 활성화는 전혀 이뤄지지 못했다. 퓨전요리와 전통차 등을 내세운 청년 점포 10곳이 문을 열었지만 두 달만에 3곳이 문을 닫았다.
청년상인 서모 씨는 "아직 1년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성패를 판단하기는 이르다"면서도 "지금 상황에선 장사가 잘 되는 곳이 없다"고 했다.

앞서 2015년 북구청이 동대구시장에 조성한 '청춘장 먹자골목'도 마찬가지다. 3년 전 이 곳에는 11개 점포가 문을 열었지만 현재 운영을 하는 점포는 한두 곳에 불과하다.
현재 동대구시장은 덩그러니 방치돼 있는 '청춘장' 입간판을 제외하면 먹자골목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기도 어렵다.
영업 중인 샌드위치 가게 업주는 "기존 상인들과 갈등도 있었고 지원도 중단되니 폐업한 점포가 많다"면서 "아무리 청년 골목이라도 차별화되지 않은 업종으로는 실패가 자명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북구청은 산격종합시장에도 다른 청년몰 조성을 추진 중이다.
◆늦잡치거나 주먹구구 특화거리도 수두룩
서구청이 지난 2012년 6억원을 들여 북부정류장 일대에 조성한 '다문화 특화거리'는 '다방 특화거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서구청은 대표적인 우범지대로 꼽히던 이 곳에 다문화거리를 조성해 상권활성화와 범죄율 감소를 시도했다. 그러나 결과는 전혀 만족스럽지 못하다.
미용실을 운영하는 이모(46) 씨는 "다문화거리가 된 뒤에도 거리 분위기는 여전히 어둡고 찾는 손님도 늘지 않았다"고 했다. 한 다방 업주는 "일대에 불법 성매매를 하는 다방도 생겨났다"며 "경관을 개선한답시고 조형물 몇 개 만든 게 전부"라고 했다.
조성이 지지부진한 특화거리도 있다. 중구청이 45억원을 투입, 2015년부터 향촌동 일대에 조성 중인 '디자인 시범거리'는 완공 예정 시기를 3개월이상 넘기고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중구청 관계자는 "전선 지중화 사업이 추진 중인데, 전기 배전함을 놓을 공간이 없어 조성이 늦어지고 있다"고 해명했다.
이 밖에 중구 순종황제남순행로는 역사왜곡 논란을 낳고 있고, 비슬산 음식문화거리는 사찰음식 특화거리로 만들려다가 적합한 음식점을 찾지 못해 간판 정비로 끝났다.
초등학생 영어체험학습장을 조성하다가 수요 부족으로 실패한 범어동 '글로벌 스테이션', 영업 부진으로 3년만에 간판을 내린 북구 칠곡시장 '다문화 잔치거리' 등도 대표적인 실패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제대로 된 수요 예측 없는 마구잡이 특화거리 안돼
거듭되는 실패에도 특화거리는 계속 생겨나고 있다. 현재 대구에서 조성 중인 특화거리는 남구 이천동 테마거리와 중구 향촌동 디자인 시범거리, 동구 도동문화마을 배려의 길, 북구 옥산로 테마거리, 달서구 상화로 문화기행 등 15곳이나 된다.
앞으로 투입될 예산만 297억원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정확한 수요예측이 없이 획일적이고 '보여주기'식 특화 거리로는 성공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지금까지 대구에 조성됐거나 조성 중인 특화거리 47곳 중에서 간판 정비나 조형물 설치 등 경관개선 사업이나 먹거리 골목 조성이 각각 11곳으로 절반에 가깝다. 문화예술거리나 자연환경거리도 각각 8곳을 차지한다. 전체 거리 10곳 중 8곳의 특성이 유사한 셈이다.
조덕호 대구대 행정학과 교수는 "기초단체마다 상권활성화나 경관 개선을 내세워 특화거리를 만드는데, 대부분 보여주기식에 그치고 있다"며 "실패가 반복되는데도 무작정 예산을 투입하는 것은 안 된다. 올바른 도시재생의 방향이 무엇인지 지금부터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먹거리 골목 위주의 획일화된 유형도 문제로 꼽힌다. 전경구 대구대 도시지역계획학과 교수는 "서문야시장 성공 등의 여파로 먹거리 일색의 특화거리가 많이 생겼지만 주변 상권과 연계나 특색없이 양산되는 특화거리는 망하기 십상"이라며 "기획단계부터 '골목의 감성'을 읽을 줄 아는 지역민들의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부 공모사업으로 이뤄지는 특화거리가 기초단체장의 치적 과시 수단으로 활용된다는 목소리도 있다. 대구 모 구청 관계자는 "철저한 검증 없이 '예산부터 따고 보자'는 식으로 공모 신청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상황에서 시민단체 등 외부 목소리를 듣기 어렵고, 아이디어 없는 특화거리가 양산된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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