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권영진 시장의 4년

박병선 논설위원
박병선 논설위원

문희갑 전 대구시장의 별명은 '문핏대'다. 걸핏하면 화를 내는 다혈질에 불도저 같은 추진력 때문에 얻은 별명이다. 1997년 경상감영공원이 만들어질 당시, 공무원들은 '문핏대'가 공사 현장에 나타나면 벌벌 떨었다. 문 전 시장은 공사 현장을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지시하고 잔소리하고, 눈에 거슬리는 것이 보이면 곧바로 핏대를 올렸다. 그가 공사 현장을 찾은 횟수만 해도 수십 번 넘었으니 공무원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만했다.

경상감영공원은 문 전 시장의 작품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228기념공원,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같은 도심공원도 그의 추진력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나무 심기도 빼놓을 수 없다. 스스로 '나무 시장'이라고 불리길 원할 정도로 재임 7년 동안 645만 그루의 나무를 심어 대구를 밝고 푸르게 만들었다. 당시에는 대구 경제를 살리라고 시장으로 뽑아줬더니 환경에만 신경 쓴다는 비아냥이 있긴 했지만, 그가 뿌린 과실은 오롯이 대구 시민의 차지가 됐다.

조해녕 전 시장은 취임 1년도 안 돼 지하철 참사가 일어나는 바람에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없었다. 실의에 빠져 시장실에서 '칩거 아닌 칩거'를 하는 와중에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유치를 기획할 정도로 아이디어가 남달랐다. 전임 김범일 시장은 그리 대중적인 인기가 없었지만, 업적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국가산업단지, 테크노폴리스, 첨단의료복합단지, 한국뇌연구원 등등…. 치밀함과 기획력을 갖춘 보기 드문 시장이었다.

3명의 민선 시장 모두 재임 중에는 이런저런 비판에 시달렸어도, 세월이 지나고 보니 이들의 업적이 상당했음을 알게 된다. 뚜렷한 자기만의 개성을 갖고 시민들에게 큰 이득을 안겨줬으니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이 마땅하다.

이제, 재선에 성공한 권영진 시장 얘기를 해보겠다. 권 시장이 재임한 4년간 업적을 꼽으라면 금방 떠오르는 것이 없다. 굳이 있다면 몇몇 기업을 유치하고 '치맥 페스티벌' '컬러풀 페스티벌' 같은 행사를 연 정도다. 권 시장이 지난달 지방선거에서 여당 후보에게 고전한 이유 중 하나다.

권 시장이 4년 전 취임할 때만 해도 최초의 정치인 출신이라 기대감이 컸다. 정치인답게 중앙정부와의 소통은 물론이고 시청 직원들의 신명을 북돋울 것이라고 믿었다. 아쉽게도, 그렇게 되지 못했다. 국책사업 유치는 말할 필요도 없고, 시청 내부에서조차 '측근 정치'니 '밀실 인사'니 하며 구설이 많았다. 시청 주변에서는 '일해도 알아주는 분위기가 아니다'는 목소리마저 나온다.

권 시장 본인도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별로 한 것이 없다는 세간의 평가를 모를리 없고, 권 시장 스스로도 "10, 20년 뒤 길게 보고 있다"는 말로 현재의 어려움을 해명하고 있다. 권 시장은 재선 임기를 시작하면서 "대구 취수원 이전, 통합신공항 건설, 대구시 청사 이전 등 민생현안 해결에 시장직을 걸겠다"고 했다. '시장직을 걸겠다'는 것은 함부로 내뱉을 말이 아니지만, 그 정도로 압박감과 초조함에 쫓기고 있음을 보여준다.

권 시장에게는 4년이란 짧지 않은 시간이 남아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앞으로의 4년은 지나간 4년과 완전히 단절해야 한다. 과거와는 다른 생각과 행동, 자세를 보이지 않으면 시행착오를 되풀이할 뿐이다. 차별적인 권 시장만의 이미지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구관이 명관'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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