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메디컬 퓨처스] 설기호 대구가톨릭대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

'간호사가 되고 싶어 하는 꼬마 환자가 있다. 작고 귀여운 아이다. 웃는 모습이 참 예쁘다. 내 앞에서 선생님처럼 아픈 사람을 돌봐주는 사람이 되겠다고 제법 당차게 말했다. 귀여웠다. 하지만 그 친구는 간호사가 되진 못할 것이다. 어른이 될 때까지 살지는 못할 테니까. 어떻게든 돕고 싶지만 내 힘으로도 어쩔 도리가 없다. 정말 안타깝고 안쓰럽다.'

설기호(37) 대구가톨릭대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는 다정다감하다. 한 가지를 물으면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길고 자세한 설명이 따라붙는다. 그러면서도 논리정연하다. 말이 글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단어 선택도 신중하다. 늘 '나는 좋은 의사인가' '최선을 다하는 의사인가' 고민한단다. 그의 표정에서 순수함과 진지함이 함께 묻어난다.

설기호 대구가톨릭대 방사선종양학과 교수
설기호 대구가톨릭대 방사선종양학과 교수

◆ 행복을 나누고 싶어 하는 의사

설 교수는 일벌레다. 2016년 대구가톨릭대병원에 터를 잡은 뒤 일에만 매달렸다. 제대로 여행을 가본 기억이 별로 없다. 해외에도 나가보지 못했다. 해외 학회에 참가하는 것도 남의 일이었다. 아내가 출산할 때도 반나절 휴가를 낸 뒤 바로 복귀했을 정도다. 그는 "병원에서 쉬지 말라는 사람이 없지만 내 마음이 걸렸다. 방사선 치료를 기다리는 환자들을 생각하면 일손을 놓기 쉽지 않다"며 "사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적지 않은 의사들이 그럴 것"이라고 했다.

설 교수가 얘기하는 방사선 종양학의 매력은 암 환자와 동행한다는 것이다. 그가 만나는 환자 가운데 90% 이상이 암 환자다. 지치고 힘들 때마다 책임감으로 버틴다. 설 교수는 "내가 잘 나서 의사가 된 게 아니다. 주변 분들의 도움 덕분에 이 자리까지 왔다. 그런만큼 받은 걸 나눠야 한다는 소명 의식이 있다"며 "방사선 치료를 받는 이들은 오래 보는 게 보통이다. 하루하루 좋아져 가는 환자들을 보는 게 좋다"고 했다.

꿈을 물었을 때 설 교수의 눈시울은 갑자기 살짝 붉어졌다. 그는 미안해하며 떠나간 환자들 생각을 잠시 했단다. 설 교수는 "언젠가 천국에 갔을 때 그동안 떠나보낸 환자들을 만나면 '선생님을 만나서 감사했다. 행복했다, 덕분에 좋았다'는 말을 듣고 싶다. 그리고 반갑게 인사를 나눴으면 좋겠다"며 "그런 의사가 되기 위해 더 노력하겠다. 그런 의사로 기억되고 싶은 게 꿈이다"고 했다.

설기호 대구가톨릭대 방사선종양학과 교수
설기호 대구가톨릭대 방사선종양학과 교수

◆컴퓨터로 수술하는 의사

설 교수는 CT를 집어넣은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치료 범위를 결정하고, 방사선을 이리저리 쬐는 시도를 수차례 반복한다. 이 같은 시뮬레이션을 통해 연구 데이터를 축적하고, 최적의 치료 계획을 찾아 실제 상황에서 그대로 구현한다. 그는 "반복 실험을 통해 종양을 줄이고 정상 조직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을 찾는다. 외과와 달리 우린 컴퓨터 프로그램이 메스이자 수술방"이라고 했다.

방사선종양학은 최첨단 테크놀로지의 집약체다. 고에너지의 방사선을 안전하게 사용해 치료하는 것으로 컴퓨터를 비롯해 각종 첨단 장비와 친해져야 한다. 새로운 기술과 흐름을 따라가야 한다는 압박감이 클 만도 하다. 설 교수는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니 부담이 안 될 수는 없다. 생명을 다루는 분야니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래야 지식이 발전한다"고 했다.

설 교수는 방사선 치료의 부작용에 대해 강의해 달라는 외부 요청을 받을 때 제일 난감하다. 환자의 상태는 물론 어느 부위를 어떤 방법으로 수술했느냐 등 각종 상황에 따라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그는 "방사선 치료의 최대 장점은 '칼 없는 수술'이라는 점이다. 기관을 보전하면서 내부 장기를 잘 치료할 수 있다"면서 "기본적으로 방사선 치료는 국소 치료다. 담당 의사와 충분히 상의하면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약력> ▷1981년 경북 성주 출생 ▷경북대 의대 졸업(학사ㆍ석사ㆍ박사) ▷칠곡경북대병원 방사선종양학과 임상강사 ▷경북대병원 방사선종양학과 임상강사 ▷대구가톨릭대병원 방사선종양학과 조교수(임상과장) ▷대한방사선종양학회 ▷유럽방사선종양학회 ▷대한암학회 ▷대한폐암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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