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처음 읽는 수영 세계사/에릭 샬린 지음/김지원 옮김/이케이북 펴냄.

수영 세계사 표지
수영 세계사 표지

인간은 (맨몸으로) 새처럼 공기 중으로 날아오를 수 없고, 두더지처럼 땅속으로 파고들어가지도 못한다. 샐러맨더(salamander; 서유럽 신화에 나오는 괴물로 불속에 산다.)처럼 불을 뚫고 지나가지도 못한다. 하지만 물고기처럼 헤엄칠 수는 있다.

대다수 현대인들은 수영을 수영장이나 강, 바다에서 놀이나 건강을 위해 즐기는 활동 혹은 스포츠 경기 종목 정도로 여긴다. 하지만 수영의 범위는 이보다 훨씬 넓다. 스포츠나 놀이는 물론이고 수렵, 전쟁, 신체단련, 종교의식, 예술 등 인간활동의 거의 모든 측면과 연결돼 있다. 이 책은 여러 시대와 문화, 장소를 통해 지금은 거의 사라진 지난날 물의 세계를 환기하고, 미래 물의 세계를 살펴본다.

◇ 우리는 왜 수영을 하는 걸까

예부터 인간은 물과 가까웠다. 인류의 선조로 25만∼3만 년 전까지 살았던 네안데르탈인은 물에 살다시피 했다. 그들은 얕은 물을 휘저어 음식을 찾고, 육지에서 웬만큼 떨어진 섬까지 헤엄쳐 갈 수 있을 만큼 수영실력이 뛰어났다.

우리는 대체 왜 수영을 하는 걸까?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에서 수영을 우리의 자아가 통제하거나 감독할 수 없는 감정과 무의식, 성의 상징적인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는 수영보다 걷기나 달리기를 더 자주 한다. 그럼에도 프로이트는 걷기나 달리기처럼 일상적인 활동보다 덜 일상적인 수영을 인간존재와 더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보았다. 인간과 물의 이런 관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대부분의 육지 포유류는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물을 피한다. 유일한 예외가 인간의 사촌격인 영장류다. 대부분의 영장류는 종종 물에 몸을 담그고, 심지어 온천욕을 즐기기도 한다. 육지동물인 인간과 영장류가 물을 즐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이 책은 이 같은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어머니의 자궁에서 '헤엄치는' 태아였던 우리 개인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고, 나아가 인류의 기원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결국 '인류는 물의 세계에서 육지로 도망친 난민'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될 것이다.

◇ 물에서 도망친, 그러나 사로잡힌

40억년 전 지구는 화산성 돌투성이의 불모지였다. 대기는 이산화탄소와 유독한 다른 기체들로 구성돼 있었다. 바다에서는 35억년 동안 생명체가 발달하기 시작했고, 5억 4천200만년 전 '캄브리아 대폭발기'이라는 유전자 대박이 터졌다. 이후 5천만년 동안 식물들이 육지를 점령하고, 대기를 고등 생명체가 숨 쉴 수 있는 조건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육상환경은 이제 식물과 곤충이 살아갈 수 있게 되었고, 물고기와 원생 양서류가 포식자를 피해 또 식량을 찾아 육지로 나오기 시작했다. 3억 년 전 동물과 식물이 곤충의 뒤를 따라 육지로 올라왔으며 물과 관계를 끊고 육상생활에 적응했다.

그렇게 거주지 측면에서는 물과 관계를 거의 끊었지만 생명체는 여전히 물을 필요로 했다. 파충류든 조류든 포유류든 모든 육생동물은 물을 마셔야 살 수 있다. 동물의 몸무게 대부분을 물이 차지한다.

생식에서도 대부분의 동물은 물에 의존한다. 양서류는 물로 다시 돌아가 짝짓기를 하고 수생 알을 낳고 수생 유충기를 보낸다. 육생 파충류와 조류는 물에서 완전히 떠나기는 했지만 부화때까지 필요한 모든 물과 영양분이 들어있는 방수알을 낳는다. 포유류의 정자는 물을 타고 난자를 찾아가고, 태아는 98%가 물로 이루어진 양막 안에서 헤엄친다. 몸은 육지로 빠져나왔지만, 발목은 여전히 물속에 있는 셈이다.

◇ 수영은 직업기술이자 군사훈련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황화 등 최초의 도시문명은 강 유역에서 융성했다. 당시 사람들에게 수영은 생존기술이었다. 그들은 음식을 구하기 위해 바다와 강, 호수에서 헤엄쳤다.

문명이 더 발달하면서 수영은 어부들의 필수 기술이자 군인들의 훈련 항목이었다. 청동기 시대 권력자들은 몸을 꾸미고 신들을 찬미하기 위해 다양한 장신구를 요구했고, 바닷가나 강가에 사는 사람들은 진주와 밝은 빛깔의 조개껍데기, 산호를 구해 바쳤다.

인간이 바다로 나아가 그리스, 카르타고, 로마 같은 해상 제국을 건설하면서 선원과 군인들에게 수영은 기본적인 기술이 되었고, 강이나 바다 등 천연 수원은 물론 인공 수영장에서 수영 연습을 하게 되었다. 특히 로마인들은 취미와 군사적 목적에서 수영 기술을 상당히 발달시켰다.

하지만 중세에 이르러 기독교의 영향으로 사람들은 물의 세계에 등을 돌리고 수영하는 법을 잊었다. 수생환경은 경이롭고 실용적이며 즐길 수 있는 세계가 아니라 어떻게 하든 피해야 하는 괴물들이 가득한 무시무시한 곳이 되었다. 기독교에 물이 좋은 의미로 등장하는 경우는 드물다.(물의 파괴력을 강조한 노아 이야기, 나일 강에 던져진 아기 모세, 모세를 막아선 홍해 등) 서구에서 인간이 물로 다시 돌아간 것은 르네상스 시대였다.

◇ 유난히 탐구속도가 늦은 수중세계

인간은 선사시대부터 지구를 탐험하고 곳곳에 정착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과학혁명과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하늘로 진출했고, 망원경과 현미경을 만들어 맨눈으로 볼 수 없는 세계까지 밝혔다.

하지만 수중 세계는 최근까지도 탐험 대상이 아니었다. 고대부터 다이빙 벨 기술이 사용되기는 했지만, 공기호스가 달려 있는 잠수복은 18세기에야 나왔다. 이 기술은 1950년대까지 사용되었는데 이산화탄소가 몸에 쌓여 위험할 뿐만 아니라 물속에서 이동 또한 대단히 제한적이었다.

인간은 20세기 초에 들어서야 비로소 새로운 스쿠버 기술을 찾아냈다. 1942년 애쿼렁(aqualung; 고압 압축공기가 든 잠수용 수중 호흡기)을 개발했고, 이어서 수중활동을 훨씬 자유롭게 해주는 스쿠버 세트를 만들어냈다. 이런 기술이 발달하면서 20세기 후반에는 취미 수영과 스포츠 수영이 폭발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바다탐구 속도는 여전히 늦다.

태양계에 있는 달과 행성, 다른 천체들을 지속적으로 탐사하고 우주정거장은 물론 인공위성이 2,000개가 넘지만, 해저 조사 연구소는 딱 하나뿐이다. 핵잠수함들이 바다 밑을 훑고 다니지만 이 잠수함들이 갈 수 있는 깊이는 490미터로, 이 정도로는 해저 깊은 곳을 탐사할 수 없다.

◇ "호모 아쿠아티쿠스가 될 수도"

바다는 지구 표면의 71퍼센트를 차지한다.

최악의 기후 예측에 따르자면, 지구상의 대도시와 해안가 인구 밀집 지역이 언젠가는 물에 잠기게 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더 높은 곳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바다로 들어갈 것인가.

설령 지구상 평지 대부분이 물에 잠기지 않더라도 인구가 늘어나고 천연자원과 거주지역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면 우리는 바다를 개척해야만 할 것이다. 이 새로운 세계에서 인류는 걷는 대신 수영을 기본적인 이동방식으로 사용할지도 모른다. 지은이는 "호모 사피엔스로 살아온 인류는 결국 '호모 아쿠아티쿠스(Homo Aquaticus; 수생인류)'로 진화할 수도 있다"고 상상력을 발휘한다.

436쪽 1만8천원.

▷지은이 에릭 샬린은…

수영 코치이자 연구자로 수영에 관한 글쓰기와 학문적 연구를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완벽의 신전: 운동센터의 역사'(Reaktion, 2015)가 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