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는 전쟁이다. 월드컵이 열릴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명제이다. 결승전을 향해 치닫는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도 축구는 전쟁으로 전 세계인 뇌리에 새겨지고 있다. 이 덕분이랄까. 월드컵은 스포츠 무대에서 올림픽보다 더 인기를 끌고 상업성이 높은 메이저 대회로 자리 잡고 있다.
우리 국민의 축구 사랑은 여느 나라 못지않다. ‘국대’로 불리는 국가대표팀에 대한 관심은 가히 광적이다. 이러다 보니 언론 기사와 댓글, SNS를 통한 국대에 대한 평가는 전쟁처럼 살벌하다. 러시아 월드컵에서 국대와 우리 축구 팬은 세계인들을 놀라게 하는 또 한 번의 전쟁을 치렀고, 월드컵 뉴스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국대는 조별리그에서 2패의 수모를 당한 뒤 세계 랭킹 1위이자 디펜딩 챔피언 독일을 2대0으로 제압, 파란을 일으켰다. 축구 팬은 이 과정에서 맹렬한 비난과 칭찬을 주고받는 종잡을 수 없는 행보를 보였다.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통해 우리의 국민성으로 변질한 냄비 근성이 어김없이 나타난 것이다. 공중파 3사의 해설자들은 시청률 경쟁의 도구가 된 듯 이를 부채질했다. 이들이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의 주역이었기에 선수단 비난으로 팬을 자극하는 해설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최선을 다했고, 불운이 뒤따랐음에도 축구 팬들은 스웨덴전 패배를 전술의 실패로 간주했다.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에 도취한 국민에게 성과 없는 축구는 무의미한 존재였다.
전쟁처럼 무조건 이겨야 하는 게 우리 국민의 축구이자 월드컵이다. 언제까지 우리는 투혼 축구에 매몰돼 있어야 하나. 어쩌면 한국 축구의 최대 걸림돌은 감독의 능력이나 축구협회의 전횡이 아니라 국민의 과도한 성적 지상주의가 아닐까. 왜 처음부터 독일전처럼 하지 않았느냐고 하지만 그건 구실에 불과하다. 스웨덴과 멕시코전에서 비디오 판독의 제물이 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독일전 승리로 16강에 오를 수 있었다. 이 역시 결과론적인 추론이다. 축구는 팔을 제외한 온몸으로 하는 동적인 스포츠로, 살아있는 생물이다. 찰나의 판단으로 천당과 지옥을 오갈 수 있다. 현대 축구의 ‘압박’이란 무기를 스웨덴전에서 라인을 내려 사용한 게 신태용호의 죄 아닌 죄가 되어버린 것이다.
들여다 보면 독일을 깨는 기적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1994년 미국 월드컵. 40℃의 폭염 속에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벌어진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한국은 독일에 2대3으로 석패, 2무 1패의 전적으로 예선 탈락했다. 당시 한국은 전반 3골을 내줬으나 후반 황선홍과 홍명보의 골로 따라붙는 저력을 보였고 막판 파상 공세로 독일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경기 후 독일 선수들은 시간이 독일을 살렸다며 후반 열세를 인정했다. 이어 우리는 한일 월드컵 준결승전(0대1 패)과 2004년 평가전(3대1 승)을 거쳐 러시아 카잔에서 기적을 연출했다. 미국 월드컵에선 시간이 부족했지만 이번엔 무려 9분이나 주어진 추가 시간에 독일의 무릎을 꿇렸다.
조별리그 탈락의 아쉬움에도 대구 축구팬들은 대구FC의 국대 수문장 조현우 덕분에 보상을 받았다. 독일전 후 조현우는 “대구 시민과 국민에게 감사드린다”고 했다. 그의 감사 인사에는 2003년 K리그에 뛰어든 후 16시즌 동안 시행착오 속에 시민 혈세 1천억원 이상을 쓴 대구FC의 존재 가치가 담겨 있다.
4년 후에도 월드컵은 전쟁으로 다가올 것이다. 국내 축구 풍토를 고려하면 국대를 바라보는 국민 눈높이가 낮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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