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지 않았다. 이런 적도 없었다. 이렇게 눈만 뜨면 온통 보수 아니면 진보로 세상이 가득 찬 적이 없었다. '보수'란 말은 사회적으로도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고 정치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말은 아니었다. 그게 불과 2년 전이었다. 그런데 벌써 아득한 옛일처럼 느껴진다.
지금은 TV도 신문도 인터넷에도 '보수' 또는 '진보'가 안 들어가는 곳이 거의 없다. 명칭부터 그렇다. 보수 매체, 보수 정당, 보수 지지층, 보수 또는 진보적 기업과 학자, 예술가까지 그동안 이 말을 안 쓰고 어떻게 살았나 싶을 정도다. 이젠 사람과 세상, 사람의 일과 세상의 모든 일이 진보와 보수의 기준으로 나뉘고 보수와 진보의 논리로 설명되고 가치가 매겨지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진보와 보수라는 말이 이렇게 성행하게 된 데는 한 라디오 방송 진행자의 역할이 컸다. 이젠 학자들도 앞 다투어 보수와 진보를 말하고 여론조사기관은 보수층과 진보층의 지지율 추이와 상관관계를 자세하게 분석해 결과를 발표한다. 이런 식이라면 세상에 남녀가 있듯이 우리 사회엔 '보수'와 '진보' 두 종류의 사람이 살고 있는 셈이다. 만약 그 밖에 남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중도'로 분류될 것이다.
난감하다. 세태가 이런데도 지금 당장 누가 혈액형 묻듯이 "넌 뭐냐?"고 하면 정확히 답을 할 수가 없다. 보수가 뭔지 진보가 뭔지 아직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겸연쩍은 마음보다 몇 가지 따져보고 싶은 생각이 먼저 든다.
돌이켜 보면 진보가 뭔지, 보수가 뭔지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따로 배운 적이 없다. 작년 한 해 동안 나만 빼고 다른 모든 사람들이 어디 가서 공부하고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명확히 그게 뭘 뜻하는지 난 아직 모른다. 그래서 어떻게 이토록 짧은 기간에 그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이 보수인지 진보인지를 알게 되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예전엔 여당이든 야당이든 가릴 것 없이 자기들이 바로 서민의 대변자라 했다. 그런데 지금은, 특히 우리 지역에 연고한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보수의 대변자'라고 말한다. '보수의 마지막 보루에서 위기의 보수를 구해 내겠다'고도 한다. 다만 그 보수의 가치가 뭔지에 대해서는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
정치적 '보수주의' 또는 '진보주의'는 유럽과 미국인들이 그들의 역사 속에서 빚어낸 인간과 인간의 삶을 대하는 시선과 태도에 관한 '그 무엇'이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집단 구성원이 지녀야 할 태도나 마음가짐과 관련해 학교에서 배운 건 '국기에 대한 맹세'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다음으론 '나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로 시작하는 '국민교육헌장'이 떠오른다. 그뿐이다. 토리당과 휘그당의 면면을 배운 적이 없고 미국 건국 초기 '연방주의자'들의 이상과 철학도 알지 못한다. 그러니 그들이 지녔던 생각의 내력이 우리의 역사와 정치문화에 어떻게 접목될 수 있는지는 더더욱 알지 못한다.
'다양성의 확산'은 진보가 아니라 보수의 핵심 가치임에도 '혼연일체'만을 강조하다 급기야 가당치도 않은 '보수 혁명'까지 외치는 걸 보면 저 보수지킴이들 또한 보수가 뭔지 알기나 할까 싶다. 우리에겐 오랫동안 건전 세력과 불건전 세력, 아니면 민주와 반(反)민주주의자들이 있었을 뿐이다. 느닷없는 보수와 진보 타령은 나라를 떠받치는 두 기둥이 아니고 우리를 태우고 갈 양 날개도 아니다. 단지 그렇게 보이려는 속임수일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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