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탑 실은 붉은 돛배 붉은 깃발도 가볍네/ 신령께 빌어 험한 파도 헤치고 왔네.'
고려 일연 스님은 서기 48년, 붉은 깃발 앞세우고 붉은 돛배 타고 이 땅을 들른 먼 인도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이 남해안 한 나루터에 도착한 모습을 삼국유사에서 이렇게 전했다. 바닷길 2만5천 리, 석탑 실은 돛배에 의지한 채 목숨을 걸고 낯선 가야국에 닿은 공주는 마침내 수로왕을 만나 인연을 맺고 새 삶을 시작했다. 또한 자신의 성을 딴 후손도 남겼으니 김해 허씨다.
이는 뒷사람들의 영감이 되었고 훌륭한 글감이었다. 대구 출신 작가 김정이 2010년 청소년 역사소설 '허황옥, 가야를 품다'를 쓸 수 있게 된 까닭도 그랬다. 김정 작가는 "허황옥은…붉은 돛을 단 큰 배를 타고 2만5천 리의 긴 항해 끝에…나루터에 이르렀다…수로왕과 아유타 공주의 혼인은 오천년 우리 역사상 최초의 국제결혼"이란 의미도 부여했다.
시작과 달리 끝이 아름다운 허황옥의 사연은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의 2015년 5월 방한 때 다시 부각돼 관심을 모았다. 모디 총리는 "인도 공주가 한국에 와서 일가를 이뤘고, 그 후손들이 지금도 인도와 관계를 맺고 있다"며 2천 년 두 나라의 오랜 인연을 허황옥으로까지 끌어올렸다.
이런 두 나라에 얽힌 사연에 대구가 인연의 끈을 하나 더 보태게 됐다. 12일 대구출입국외국인사무소가 25세 인도 출신 여성 정치 활동가에게 대구 최초로 법적 난민을 인정한 일이다. 지난해 3월 인도 선거 때 신변에 위협을 받자 그해 8월 한국에 망명, 올해 초 대구에서 난민을 신청한 것이 인정되면서 이제 낯선 대구에서 새 삶을 시작한 셈이다.
바닷길 배를 타고 영남(嶺南) 남해안 가야 땅 나루터에 발을 내디딘 16세의 인도 공주 허황옥과 달리 하늘길로 한국에 망명의 닻을 내리게 된 25세 여성 정치 활동가가 영남의 중심 대구에서 펼칠 삶이 희망차고, 앞서 가야국에 뿌리를 내린 첫 인도 여성의 애정 어린 보살핌이 함께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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