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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칼럼] 취수원 문제 우(禹)가 물길 트듯이

이춘수 편집부국장
이춘수 편집부국장

1970년대 중반 이전까지만 해도 농업용수 문제가 심각했다. 마른장마에 가뭄이 닥치면 천수답의 말라 죽는 벼와 함께 농부들의 가슴은 새까맣게 타들어 갔다.

도랑물을 가두는 보매기(보막이)는 벼농사의 성패를 좌우했다. 날이 가물면 물을 지키고, 빼가려는 농부들 사이에 크고 작은 싸움이 벌어졌다.

보 싸움과 물꼬 싸움에는 이웃사촌도 없었다. 육두문자가 오가는 것은 기본이고 논두렁에서 육탄전을 벌이는 것도 다반사였다.

부처님의 고향인 카필라와 이웃 부족인 콜리야는 로히니강을 사이에 두고 사이좋게 물을 끌어다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그런데 어느 해인가 심한 가뭄이 계속되자 양쪽 부족 사람들은 물을 좀 더 확보하기 위해 강물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몇 사람의 입씨름에서 비롯된 싸움이 급기야 군대까지 동원되기에 이르렀다. 이 소식을 접한 부처님은 분쟁 지역으로 달려갔다. "그대들은 물과 사람 중에 어느 쪽이 더 소중하오?" "물보다는 사람이 훨씬 소중합니다." "그런데도 물 때문에 사람의 목숨을 버리려고 합니까?" 부처님의 중재로 싸움은 끝났다. 하마터면 피로 물들 뻔한 로히니강은 다시 두 부족의 소중한 식수원이 되었다.

대구권 취수원의 구미 이전 문제가 꽉 막힌 채 실마리를 풀지 못하고 있다. 물꼬 싸움하듯 격렬한 대치만 있다. 낙동강 페놀오염 사태와 최근의 과불화화합물 유출 파동에서 보듯 대구 취수원 이전 문제는 대구권 300만 주민들에게 생명선이나 다름없다.

생명을 담보하는 안전한 취수원 확보에 지혜를 모아야 한다. 정부, 대구시, 경북도, 구미시 4자가 마주 앉아 해법을 찾아야 한다. 먼저 대구시는 시장, 국회의원, 경제계 및 민간대표들로 사절단을 꾸려 구미시민을 만나라. 만남을 거부하면 수십 번이라도 찾아가 무릎을 꿇어야 한다. 만나서 대구시민들의 절박한 사정을 진정성 있게 이해시켜라.

행정적으로는 정부가 나서 구미시민들이 우려하고 있는 공업용수 부족과 취수원 이전 지역의 재산권 침해에 대한 보상을 약속해야 한다. 공업용수 부족이 사실이라면 이에 대한 대책도 만들어야 한다.

이에 더해 구미지역의 각종 인프라 건설에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이낙연 국무총리를 비롯한 역대 총리가 취수원 이전 문제 해결을 약속했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다. 정부도 낙동강 수계오염이 '물복지' 차원에서 국가적 비상 상황으로 인식하고,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 대구와 구미 간 중재에는 경북도의 역할도 중요하다.

구미는 대구에 사는 내 친구의 고향이고, 대구가 고향인 나의 사촌은 구미에서 다섯 식구가 오손도손 살고 있다. 구미와 대구는 한 우물을 파서 먹고 살아가야 할 이웃사촌이다.
왕조시대에도 물을 다스리는 것은 국가의 존망을 좌우하는 과제였다. 요(堯) 임금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황하의 범람이었다. 신하들은 곤(鯀)을 천거했다. 그는 흙으로 높은 방죽을 쌓아 물을 가두려고만 했다.

그러나 아무리 둑을 높이 쌓아도 폭우가 쏟아지면 무너졌다. 9년 동안 둑 쌓기를 반복했지만 황하의 범람을 막을 수 없었다. 곤은 치수사업 실패로 죽임을 당했다.

다음 해결사로 우(禹)가 천거됐다. 그는 둑을 쌓기보다는 물길을 돌리는데 주력했다. 물길을 터서 흘러가게 했으며 물길을 분산시켜 힘을 약화시켰다. 우는 인심을 얻어 결국 왕이 되었다.

대구 취수원 이전과 관련된 지도자들은 '지혜롭기가 우가 물길 트듯이' 결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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