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뜨거운 불볕더위가 시작됐다. 하얀 뭉게구름이 점점이 뜬 창밖의 하늘만 보면 더할나위 없이 쾌청한 날씨 같지만 겉다르고 속다른 풍경에 절대 속아선 안될 일이다. 밖으로 나가 한발 내딛는 순간 온 몸을 불태울듯 이글거리는 찜통 더위의 습격에 "헉~"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게 되는 것이 대구의 여름이다. 역시 '대프리카(대구+아프리카)' 답다. 7월 중순에도 벌써 한낮의 기온이 사람 체온에 육박할 정도로 숨막히는 뜨거움을 자랑한다.
이런 여름날엔 가급적 바깥 활동을 자제하는 것이 상책이지만, 그렇다고 집 안에만 갇혀 있기엔 너무 갑갑하다. 쉼없이 돌아가는 에어컨 전기료도 은근 걱정스럽다. 이럴 때 혼자, 혹은 연인과, 때로는 온 가족이 찾을 수 있는 시원한 대안이 있다. 바로 북카페다. 얼음 동동 뜬 아메리카노 한 잔 들이키며 에어컨 바람 아래 책을 펼쳐놓고 유유자적 앉아 있노라면 바로 이곳이 무릉도원이요, 신선놀음이다. 최근에는 다양한 콘셉트의 카페가 등장하면서 상황에 맞게, 취향에 맞게 골라 즐길수도 있다.
유난히 더운 여름을 예고하고 있는 2018년, 가까운 동네서점에서 책 향기, 커피 향기에 파뭍혀 몸과 마음의 열기를 좀 식혀보면 어떨까?
◆온 가족 책 나들이 하기 좋은 남산제빵소

대구 중구 현대백화점 맞은 편 골목길 안에 자리잡은 남산제빵소는 지난 4월 문을 연 후 단 몇 개월 만에 대구 최고의 핫플레이스로 등극했다. SNS에 올라온 예쁘장한 카페 사진이 많은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넓은 공장 창고 같은 곳을 개조해 빵집 겸 카페로 운영되고 있는 남산제빵소는 여러가지 비쥬얼이 요즘 사람들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한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면 가장 먼저 은은한 커피향과 함께 달콤한 빵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나도 모르게 이끌리다시피 발길을 옮겨놓다 보면 맛있는 빵들이 가득한 매대 앞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주문을 완료한 뒤 편안하고 널찍한 소파에 자리잡고 앉으면 그 때부터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책들이 또 한번 나를 매료시킨다. 우드 톤의 인테리어와 은은한 조명이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내는데다 신발을 벗고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는 계단식 좌석까지 마련돼 있어 편안하다. 어린이 책까지 다양하게 구비돼 있어 주말 온 가족이 나들이 장소로 삼기에도 손색이 없다. 맛있는 빵과 음료를 즐기며 시원한 공간에서 책 피서를 즐길수 있다. 주말이면 플리마켓도 열린다. 오는 20일(금)에도 20여명의 셀러들이 모여 장터를 열 예정이다. 플리마켓 참가자도 수시로 모집중이다.
특히 이곳은 '착한 소비'를 한다는 그 나름의 자부심까지 찾을 수 있는 곳이다. 전체 직원의 절반 이상이 장애인과 사회취약계층으로 채워진 예비 사회적 기업이어서 기왕 지출하는 돈 좀 더 의미있게 쓰여진다는 기쁨이 있다. 이곳의 황혜성 대표는 은행원으로 일하면서 '사랑의 밥차' 봉사활동에 열심히 참여하다, 뜻을 가진 이들과 함께 장애인 제빵과 바리스타 교육을 할 수 있는 (주)브레드인스마일 법인을 설립하면서 아예 직장을 그만두고 운영에 뛰어들었다. 당초 도원동에서 2년 동안 카페 겸 베이커리를 운영해오다, 빵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해 지금의 남산제빵소로 자리를 옮겼다고 한다.
남산제빵소가 한쪽 벽면을 책으로 채운 것은 단순히 예쁜 공간을 위해서만은 아니다. 이 역시 장애인 고용 창출을 위한 그 나름의 철학이 담긴 아이디어다. 사서 교육을 받은 장애인들이 수시로 책 정리와 관리를 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황 대표는 "워낙 인스타그램 등 SNS를 통해 입소문을 타면서 단시간에 많은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어 감사드린다"며 "수익이 나면 더 많은 장애인 직원들을 고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미 공간을 확장키 위해 현 남산제빵소 옆 약 약 925.6㎡(280평) 규모의 건물도 추가 매입해놓은 상태다. 황 대표는 "아직 정해진 것은 없지만 손재주 있는 장애인 친구들이 만든 공예품을 판매하고 전시할 수 있는 갤러리 겸 작은 책방으로 운영하는 것을 고민 중"이라고 설명했다.
◆열대야로 잠 못 이루는 밤, 책맥 한잔 어때?

대구 중구 중앙도서관 맞은편에 위치한 '스튜디오 콰르텟'(Studio Quartet)은 책을 안주 삼아 가볍게 맥주 한 잔을 즐길수 있는 공간이다. 차분하게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을 때,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 힐링이 필요할 때, 가만히 사색하며 인생의 방향을 찾고 싶을 때 들르기 좋은 곳이다. 지난해 8월 문을 열었으니 곧 첫돌을 맞이한다.
이곳은 북카페라기보다는 서점과 카페를 합쳐놓은 형태라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 1층 서가엔 여행과 사진, 시와 문학, 에세이 등 종류별로 다양한 독립출판물을 중심으로 책들이 진열돼 있다. 간간히 익숙한 제목의 소설책들도 눈에 띄지만 그 비율은 고작 10~20%에 불과하다. 여행과 사진, 라이프스타일, 시와 문학, 에세이 등 종류별로 책이 분류돼 있다. 김명진 대표는 "우연한 기회에 독립출판물을 접하게 됐고, 흥미를 느끼게 됐다"면서 "다양한 개성이 톡톡튀는 독립출판의 매력을 알리기 위해 다양한 강좌도 마련해 놓고 있다"고 밝혔다.
독립출판물의 매력은 정제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소박한 사연에 있다. 두께나 사이즈도 제멋대로, 디자인이 좀 세련되지 못하고, 오탈자도 있고, 아주 시시하고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지만 세상에 의해 재단되지 않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펼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더구나 최근에는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는 사회분위기가 확산되고, 워라밸과 욜로, 소확행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들이 늘면서 작가나 독자, 독립출판물을 판매하는 장소까지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스튜디어 콰르텟'의 책들은 대다수가 판매를 위한 책들이다. 1층에서 책을 살펴 본 뒤 읽고 싶은 책을 골라 계산을 하고 2층 널찍한 테이블로 이동해 본격적인 책읽기 타임을 즐길수 있다. 물론, 책을 구매하지 않고도 잠시 짬나는 시간을 활용하고 싶은 이들은 2층에 전시된 책을 읽으면 된다. 시원한 맥주 혹은 커피를 마시며 달콤한 휴식을 누릴 수 있다. 특히 이곳은 주말 밤 심야서점과, 책방콘서트, 독서모임, 글쓰기 모임 등 다양한 문화행사도 마련해 놓고 있다.

◆도서관보다 매력적인 카페같은 도서관

카페에서 공부하는 '카공족', 사무실이 아닌 카페에서 업무를 보는 '코피스족'은 이제 흔한 모습이다. 카페에서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하면 능률이 더 잘 오른다는 이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예능프로그램 '알쓸신잡'에서는 이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뇌과학자인 정재승 교수는 "(카페가)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의 경계에 있어, 공간을 마음대로 컨트롤할 수 있을 때 몰입을 가장 잘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뇌의 효율이야 어떻든, 일단 심리적 효과는 상당한 것 같다. 요즘 젊은이들은 답답한 집이나 사무실 혹은 절간처럼 조용한 학교 도서관보다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사람들이 자유롭게 오가며, 입맛대로 다양한 음료까지 즐길수 있는 카페에서 공부를 하고 일을 하는 것을 선호한다. 조금 소란스러운 백색소음이 귀를 간지럽히고, 편안하고 아늑한 분위기가 심리적 압박감을 덜어주기 한결 더 공부를 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커피랑 도서관'은 이런 카페 공간에서 공부를 하거나 사무를 보길 선호하는 젊은 층의 욕구를 반영한 이색 공간이다. 도서관의 형태에 가깝지만 분위를 카페처럼 보다 아늑하게 꾸미고, 커피까지 제공한다. 이미 전국 73개의 매장이 있을 정도로 입소문을 타고 있는 형태다.
이곳의 주 고객은 수험생들이다. 커피랑도서관 수성점을 운영하고 있는 조윤희 대표는 "가장 많은 고객층이 취업준비생들"이라며 "이곳에 있다보면 우리나라의 취업난이 얼마나 심각한지 들여다볼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고 젊은층들만의 전용 공간은 아니다. 연세 지긋한 할머니 할아버지 고객도 간혹 눈에 띈다. 매일 출근해 하루 2시간 정도 글을 쓰고 책을 읽는 할아버지, 혼자 와서 차를 마시며 책을 읽는 할머니 고객들도 있다. 조 대표는 "커피랑 도서관의 장점은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공간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도서관'의 기능이 강조되는 곳인 만큼 말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 이곳의 불문율이다보니 회의나 토론, 스터디 등을 위한 별도의 룸이 마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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