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노동자 임금을 누가 주는 걸까

조두진 문화부장
조두진 문화부장

올해(16.4% 인상)에 이어 내년도에도 최저임금을 대폭 올리기로(10.9% 인상) 한 것을 두고 논란과 걱정이 많다. '1만원 대선공약'을 지키라는 목소리도 높다.

연대임금이라는 용어가 있다. 동일업종 노동자는 모두 동일임금을 받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현대자동차 생산'에 종사하는 모든 노동자는 그들 각각이 현대자동차 본사에 근무하든 하청업체에 근무하든 동일임금을 받는 임금 체계다. 이 체계에서는 해당 업체 전체의 평균 생산성을 기준으로 임금을 정하고, 노동자는 어느 업체, 어떤 작업에 종사하든 동일임금을 받는다.

당연한 결과로, 생산성이 평균보다 높은 업체는 흑자를 보고, 생산성이 평균보다 낮은 업체는 적자를 본다. 그리고 그런 상태가 어느 정도 지속되면 생산성이 평균 이하인 업체는 망한다.

현 정부의 최저임금 정책은 '연대임금'과 같지는 않지만 닮은 구석이 많다. 숙련공이든 비숙련공이든, 삽으로 땅을 파든 숟가락으로 파든 1시간에 최소 8천350원을 지급하라니 말이다.

한국 사회에 '삽으로 땅을 파는 업체'는 아직도 존재하지만, 삽으로 땅을 파는 데 시간당 8천350원을 지불하고도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업체는 없다.(그런 점에서,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을 통해 강력한 구조조정을 시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시간당 8천350원이 부담되지 않는다면 논란이 될 것도 없다. 그러나 사업을 접어야겠다는 영세사업주, 최저임금을 보이콧하겠다는 소상공인, 차라리 범죄자로 남겠다는 자영업자가 나오는 상황이라면 생각을 달리해야 한다.

노동자의 임금은 누가 주는 것일까.

국민 상당수는, 그리고 현 정부는 기업체 사장이 준다고 굳게 믿고 있는 것 같다. 노동자의 임금은 시장, 즉 소비자가 준다. 노동자가 받는 임금 크기는 기본적으로 소비자가 결정하는 것이다.(콩나물 1천원어치를 살 때도 가격 대비 품질을 알뜰히 살피는 당신 모습을 보시라) 시장의 동의를 얻지 못하는 '인위적 임금'은 부작용이 크기 마련이다.

기업주들이 임금을 착취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욕심을 덜 부리면 노동자들이 잘먹고 잘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참 잘못 생각하는 거다. 적어도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임금 착취로 버티려는 기업은 경쟁력을 잃고 곧 망한다.

대부분의 경영자들은 임금을 조금이라도 더 주고 싶어 한다. 그들이 인간성이 좋아서가 아니다. 경쟁 업체보다 조금이라도 임금을 더 주고 더 똑똑한 인재를 채용하고 싶기 때문이다. 경영자들은 똑똑한 직원들이 더 나은 제품을 생산하고, 시장의 인정을 받아 자기 사업체를 키우고 싶어 한다.

나는 시장이 만능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최저임금과 관련해 '시장'을 배제하고, '착취' 대(對) '권리'의 문제로 바라보는 인식에 동의할 수 없다. 그것은 '정치 슬로건'이지 '경제'가 아니다.

최저임금 인상이 선한 의도와 달리 큰 불협화음과 심각한 후유증을 야기하는 것은 임금을 지불하는 직접 당사자인 '소비자'를 배제하고, 간접 관계자인 정부가 그 크기를 결정하려고 들기 때문이다.

시장(소비자)을 넓히지는 못하면서 임금을 올리자니 정부는 '일자리 안정자금'이라는, '해당 기업의 돈이 아닌 돈'을 끌어다 붓고, 업체는 영업시간 감축, (근무 중) 휴게시간 확대라는 변칙을 쓴다. 더 나쁜 것은 안 그래도 취직이 어려운 노동취약 계층이 일자리를 잃고 더 가난해진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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